환인제국의 제왕들 18

<단군시대의 쇠퇴기, 단군임검 18세 - 21세 임검들의 치세>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1/08 [09:30]

환인제국의 제왕들 18

<단군시대의 쇠퇴기, 단군임검 18세 - 21세 임검들의 치세>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4/01/08 [09:30]

  © 충청의오늘


환인제국의 대쥬신제국이 1000여년을 지나면서 국력은 국토를 넓히지 못할 정도로 쇠퇴하였으나 세상은 평화로운 시기였다. B.C. 1721년 취임한 18세 단군 동엄임검은 맏아들 종년을 황태자로 삼았다. 동엄 5년에는 고수노를 시켜 대쥬신제국의 역사인 국사 18권을 편찬하여 쇠퇴하는 국력을 쇄신하려 하였다. 동엄 20년에는 지백특(티벳트)의 사람들이 대쥬신제국의 존재를 경앙하며 지역특산물을 바쳤다. 19세 단군 종년임검은 맏아들 고홀을 태자로 세우고 아우 종선을 청아왕으로 삼았다. 청아왕의 증손은 후일 조선기자의 태조가 되었다. 조선기자의 건국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사적 부분으로 정사에서 조선기자를 중국이 세운 기자조선으로 거론하기 때문이다. B.C. 1435년 종년임검은 무지한 백성들을 훈육하기 위해 <국문서당>을 설립하여 보다 많은 백성들을 교육시켰고 안정된 상권을 확립하기 위해 조개로 제조한 화폐를 유통시켜 시장체제를 구축하였다. B.C. 1420년에 닥나무껍질로 만든 종이를 일찍이 개발하였고 칡껍질로 만든 갈포 옷감을 생산하여 백성들의 의복을 풍요롭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나침판 역할을 하는 목행마(지남거)가 재발명하였다. 목행마는 14대 환웅 치우천왕때, 반란군인 중국의 화허족을 이끌고 중국의 시조왕이 된 동이족 헌인이 안개를 일으킨다는 치우천황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기 위해 이미 지남거를 발명하였다. 종년임검 26년에는 송화강의 남쪽 기슭에 조선공창소를 설립하여 많은 선박을 주조하여 송화강 지역을 구석구석 다스리고 어업을 증산시킬 수 있었다. B.C. 1385년에는 하늘의 태양과 달, 별의 존재에 대해 살피는 우주원리론을 거론하여 그 결과물인 주천역과 팔괘상중론을 저술하였다고 전한다. 20세 단군 고홀임검은 맏아들 소태를 태자로 세웠다. 고홀 4년 북흉노(훈족)가 자칭 대단군(천제)이라고 칭하며 대쥬신제국의 권위를 무시하고 감히 천제 노릇을 하려고 하니 군사를 보내 그 죄를 크게 물었다. 고홀 10년 가을에는 성스러운 흰무지개가 태양을 뚫었다는 기록이 있고 B.C. 1342년에 완성된 환인제국의 지도는 대쥬신제국의 방대한 영토와 그 뿌리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대쥬신제국의 위상을 과시하였다. 21세 소태임검은 맏아들을 태자로 삼았지만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왕권이 욕살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 조짐이 있어 직계 후계자의 계승이 쉽지않은 상황이 발생하였다. 소태임검 13년 동해빈에 키가 아홉자요 천사람의 힘을 지닌 힘센 역사질인적을 불러다가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고용하였고 B.C. 1291년 은나라 왕 무정의 침공을 대패시킨 욕살 고등은 그의 군사력을 앞세워 소태임검에게 우현왕 벼슬을 요구하는 불충을 저질렀다. 그러나 임검이 고등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대쥬신제국의 왕권은 쇠약해졌다. 임검은 욕살 고등을 두막루로 칭하였는데, 권력의 위기의식을 느낀 소태 51년 임검은 그의 아우 홀나를 회을왕에 봉하였다. 두막루 고등이 죽고 그의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이어받으면서 그의 세력을 넓혀가자, 소태임검은 오가의 욕살들을 불러모아 이들과 함께 천제자리를 양위를 논의하여 우현왕의 세력을 견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소태임검은 늙어서 정사를 계속할 수 없다고 오가의 욕살들에게 고하고 서우여 욕살에게 살수 100리를 봉하여 섭주로 삼고 소태임검 대신 정사를 맡도록 결정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우현왕 색불루는 소태임검에게 사람을 보내어 서우여에게 정사를 양위함을 중지하도록 협박하였다. 소태임검이 거절하자 우현왕은 좌우 신하들과 수천명의 사냥꾼을 군사로 징집하고 이들을 거느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소태임검은 어쩔 수 없이 서우여의 왕위를 폐한다는 명을 내렸으나, 신하들은 더 이상 임검의 명을 따르지 않고 우현왕에 의탁하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소태임검은 옥책(옥쇄)과 국보를 우현왕에게 전달하고 갈 곳이 없었던 임검은 조용히 아사달에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유약한 천제를 쫓아내고 집권에 성공한 우현왕 색불루는 B.C. 1285년 중앙권력의 중심지를 백악산으로 옮기려하였다. 그러나 많은 제후와 신하들이 천도를 강력하게 반발하자 힘있는 색블루 지지자들을 앞세워 색블루임검의 조서를 받들도록 반대자를 모두 복종시켰다. 색블루임검은 녹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제 22세 단군임검에 즉위한다. 대쥬신제국은 B.C. 2333년 건국한 이래 1000여년 만에 적통 제왕의 핏줄이 축출되고 제후가 새로운 천제를 계승하였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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