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극이야기 36

<노년의 잔혹한 소풍이야기 “소풍”>

충청의오늘 | 기사입력 2024/02/27 [11:04]

영화연극이야기 36

<노년의 잔혹한 소풍이야기 “소풍”>

충청의오늘 | 입력 : 2024/02/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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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 뿐만아니라 세계영화계가 침체에 빠졌다. 앞으로 극장문화가 사라지고 OTT 영상시대를 맞이하면서 세계영화제작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영화제작시스템의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일면도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활성화가 예고되고 질높은 의미있는 독립영화 작품들이 상업영화 극장가에 등장하여 잔잔한 감동으로 관객에게 닥아 서고 있다. 최근 화제작 중 하나가 노년의 잔혹한 소풍이야기를 그린 김용균 감독의 <소풍>이다. 김용균은 주류영화 <와니와 준하>를 시작으로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 <더 웹툰: 예고살인>까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다가 11년 만에 저예산영화 <소풍>으로 컴백하였다. <소풍>하면 <제 5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단편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송일곤의 <소풍>의 충격이 되살아난다. 한적한 시골의 아름다운 정경을 배경으로 국도를 달리는 차안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어디 가는지 묻는다. 소풍 간다고 답하는 엄마와 빚더미에 빠진 아빠의 소풍 목적은 자살 여행이었다. 다시 노년의 자살을 계획한 2024년의 <소풍>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늙은 노모들의 이야기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 읊었던,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처럼 영화 <소풍>의 주인공인 은심(나문희 분)과 금순(김영애 분)은 관객을 향해 평화롭게 웃으며 파도치는 바다의 절벽으로 사라져 간다.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은심과 금순이가 60년 만에 고향 남해를 찾아 갔다가 동창 태호(박근형 분)을 만나면서 고교시절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며 전개되는 그들의 가족이야기이다. 소풍가듯이 남해 바다풍경의 설레는 아름다움과 가슴 시리면서 따뜻한 추억의 매력을 애틋한 여운으로 관객의 마음을 짓누르는 영화 <소풍>은 단순하고 일관성있게 움직이는 카메라로 등장인물의 소풍을 몰래카메라가 기록하듯이 보여준다. 부담없이 펼치는 은심과 금순의 서술전개는 김영동의 “모래알이야기” OST에 얹혀 차분하고 일관성있게 잔잔한 갈등을 확대시켜 간다. 카메라는 감독의 의도적인 편집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움직임으로 은심과 금순 그리고 태호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포착하고 있다. 사실 영화감독은 소풍을 연상시키기보다 영화 속에 노인사회의 문제와 자식 간의 갈등을 통해 사회문제까지 오지랖 넒게 펼치는 부담스러운 짐도 관객에게 준다. 이들 가족이야기의 핵심은 사업에 실패한 기러기 아빠(류승수 분)와 며느리(이항나 분)와 손녀를 둔 은심, 도시 아파트에 살고 싶어 리조트개발에 적극 동참하는 아들(임지규 분)때문에 마음앓이하는 금순, 고향을 지키고자 리조트개발 반대시위를 이끄는 태호와 그의 딸(공상아 분) 등의 어수선한 스토리 속에서 늙은 부모의 마지막 재산인 집을 놓고 자식들의 끈질긴 탐욕을 그려본다. 홀로 아파트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며 자주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대화를 즐기는 80대의 은심이는 알츠하이머 증세로 신체적 불편함과 치매성이 염려되는 환자이다. 그녀의 생활을 변화시킨 것은 아들의 사업부진과 손녀딸의 유학경비 등으로 며느리와의 금전적 갈등이다. 이때 갑자기 방문한 사돈이며 고향절친인 금순이의 등장으로 은심은 60년 만에 남해 고향집을 찾아간다. 오랫만에 고향의 정서를 느껴보는 은심의 눈에 한적한 어촌이 리조트개발로 어수선한 것에 불만이지만 은심을 짝사랑하였던 고교 동창 태호(박근형 분)를 우연히 만나면서 은심의 무료한 생활은 변화를 맞이한다. 

남해를 배경으로 수십 년 우정과 어린 시절 추억, 그리고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두 친구의 모습은 실제 50년 의 우정을 쌓아온 나문희, 김영옥의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자연스런 연기와 친구 태호, 박근형의 넉살맞은 앙상블연기의 상승효과는 영화의 중심에 크게 자리 잡았다. 임영웅이 부르는 <모래 알갱이>의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바람이 불거든 그 바람에 실려, 그대 파도 치거든 파도에 홀연히 흘러가리” 가사처럼 그들은 고향에서 남은 여생의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남해바다를 지켜본다. 그들이 나누는 가벼운 술자리는 태호의 어깨춤과 더불어 흥겹지만 슬픈 여운을 남긴다. 마침 궁금하던 동창친구 청자의 소식을 들은 그들은 그녀가 기거하는 노인병원을 방문한다. 청자의 아들이 병든 모친의 집을 팔아 돈을 챙기고 모친만 노인병원에 버려둔 채, 아들 가족만 이민간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외로운 청자를 위해 모두 함께 노인병원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자는 생각도 하나, 노인병원의 힘든 실상이 들어나 충격받는다. 게다가 태호는 리조트개발사업에 동조하는 금순아들과 몸싸움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함께 따라간 은심은 그가 말기 뇌종양 환자임을 알게된다. 결국 태호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고, 금순도 숨겨온 허리병이 심하게 재발하여 변도 스스로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어 은심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은심도 소변실수를 하는 심각한 일시 마비 상태에 빠진다. 김용균 감독의 작은 예산으로 주류영화 못지않은 영화를 성취한 <소풍>은 노년의 가슴 아픈 복합적인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영화관람하는 순간순간 관객의 공감을 쌓아간다. 어릴 적 소풍을 앞두고 설레던 마음을 잊지않은듯 감독은 죽음 또한 소풍가는 마음으로 마무리한 충격적인 엔딩 씬때문에 관객을 한동안 극장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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