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 해프닝, 이벤트 3

<전통연희, 가면극의 총체예술성>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03/07 [09:29]

퍼포먼스 - 해프닝, 이벤트 3

<전통연희, 가면극의 총체예술성>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2/03/07 [09:29]

▲     ©충청의오늘

  

  우리의 마당극인 가면극은 500여년전 부터 해마다 국가적 축제나 추석, 대보름, 단오 등 명절 때마다 놀았던 마당극이다. 제의적인 가면극의 역사적 기록은 미미하지만 마당극의 원조격인 강강수월래는 대보름날 참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면서 세속적인 내용을 노래하며 공동체적 의식으로 국태민안을 기원한 제의적 성격을 가진 연희였다. 1만년전 환인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걸로 전하는 강강수월래는 당시 백성들이 무궁화(단화, 천지화, 한화)가 만발한 돌무더기 위에 환인제국 시조, 안파견을 모시고 그 주위를 돌며 춤추며 줄을 서서 경배를 올렸다 한다. 한마디로 우리 가면극은 그 뿌리부터 민중이 연희에 적극 참여한 종합예술성을 보여준 총체예술이다.   

 

  서양의 마당극인 그리이스 원형극장의 연극은 주신(酒神)인 박카스를 찬양하는 박카스축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이스시대 예술은 기술이었다. 예술가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기술자 즉 장인으로서 큰 대우를 받았다. 그 대우는 장인들이 신전을 꾸미고 찬양하는데 봉사하였기 때문이다. 신전을 지으면서 노동요(음악과 가사-시)를 부르고 흥얼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무용이며 신전을 건축하고 장식하는 조각과 그림을 그렸다. 주신인 박카스 신을 찬양하는 축제는 술마시며 노래부르고 춤추는 난장판을 벌렸는데, 그들을 정화하기 위해 잘 꾸며진 그리이스연극이 원형극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장인들은 시인이며 배우이며 음악가요 연주가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신들을 숭앙하는 고상한 연극을 하였던 그리이스가 사라지고 로마시대에 이르면 로마인들은 연극행위를 난잡한 삶을 즐기는 것으로 타락시켰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교황청은 1000년 동안 연극을 지상에서 금하였다. 마을 축제에서  미미하게 공연행위가 지속되었다. 다시 연극이 부활한 것은 성당의 성서극의 등장으로 가능하였다. 성당 문밖은 대중들이 모이는 시장터나 광장이었는데, 성서극을 보려는 대중들이 많아 좁은 성당 안에 모두 수용할 수가 없어 성당 밖 계단 앞 터로 나와서 공연하다가 점차 광장 중앙에 무대를 만들어 대중들이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무대 주위에 대중들이 모여 연극을 보면서 추임새를 던졌다. 이후 성서극이 아닌 본격적인 다양한 마당극이 곳곳의 광장에 등장하였다. 

 

  한국의 마당놀이는 1980년대 민중극으로서 대학축제에서 고정레퍼토리로 등장하였다. 정통적인 드라마로서 마당극 전파는 극단 <민예>에 이어 <미추>에서 대중화 시켰다. 그 뿌리인 우리의 전통가면극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삼국시대 처용무부터 거론되며 원래 제의적 행위의 과정에서 뒷풀이로 마당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서양의 난장판인 박카스축제와는 달리 마을 사당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수호신에게 제사드리고 농악대를 앞세워 행진하며 동네 집집마다 신의 가호를 빌어 준다. 동네 마당에 이르면 놀이판을 벌려 다음날 동틀무렵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술마시며 난장을 벌렸다. 사실 제의적인 가면극을 마당놀이판으로 확대시킨 것은 봉건시대의 지배자들이 천민들을 효율적으로 부려먹기 위해 벌린 축제로 전한다. 죽도록 일하느라 불만이 쌓인 천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휴식을 주는 놀이판인 것이다. 축제를 벌릴동안 양반들은 천민들이 눈치를 보지않고 마음껏 놀도록 사찰 등으로 자리를 피한다. 왜냐하면 마당놀이의 주제가 지배계급인 양반이나 스님들을 조롱하는 풍자적인 내용으로 양반들이 듣기에 거북스럽고 천민들은 양반눈치를 보게되면 놀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면극의 신성한 제의성은 점차 사라지고 볼거리 놀이판으로서 장날이나 권세가들의 생신 또는 경사스러운 날 남사당 같은 예능패거리에 의해 연희가 지속되었다. 특히 일제시대 통치자는 마을의 대동굿놀이의 행진이 독립운동 시위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농악대를 앞세운 동네나 거리 시위를 금지시키고 가면극놀이만 허용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박제화된 가면극이 부활되었지만 오늘의 마당극은 제의적 축제가 이미 사라진 총체예술적인 놀이판이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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