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리고 어머니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입력 : 2014/05/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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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히 한 드라마에 관심이 생겨 몇 편을 연속으로 보면서 혼자 웃다가 그래! 고개를 끄떡이며 시간을 보냈다.  40대를 겨냥한 것 같은 이 드라마는 전반적인 내용으로야 기존의 드라마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과장되지 않고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것 같아서 줄 곳 봤다. 그러면서 생각해 봤다. 여자를! ‘4.16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참 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3.5제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마음에 공감이 갔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팠다. 어미다! 내가 다니던 여자중학교 교정 한 쪽에 모녀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 비문에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글이 있었다. 그 글을 볼 때 마다 아직 어린 나는 가끔 강한 모습의 나의 어머니를 떠 올려 보곤 했었다.


여자(女子)!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린이가 되고, 학생이 되고, 숙녀가 되고, 아내가 되고, 비로소 딸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된다. 나 또한 귀엽고 조그맣고 예쁜 아가였다. 초등학생일 적에는 전교에서 제일 긴 생머리를 가진 이유로 때로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었고, 단발머리 귀 밑 1cm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에서 두발 자유화에 사복을 입은 고등학생이기도 했었다. 20대에는 청바지에 면 티와 운동화를 신고 사이클 자전거를 타고 몰려다니기도 했고, 봉사활동과 캠프도 참 많이도 다녔었다. 그러다 남들도 하는 사랑도 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여자로 살았던 삶에서 180도의 변화가 생겼고 더는 여자이기를 포기했다. 권리 보다는 의무에 마음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여자에게 있어서 자식은 그렇게 여자의 삶과 맞바꾼 존재가 되었다.


그런 애착은 생명을 뱃속에 10달을 품어 지내면서 형성된 엄청난 교감이 만든 결과물이다. 태어나지 않은 생명과 함께 교감을 나누고, 느끼고, 반응하면서 어미는 자식을 그렇게 몸  속에 품어 길렀다. 처음 느끼는 태동은 지렁이가 뱃속에서 기어 다니는 듯 간질거리고 꿈틀거리는 묘한 기분과 감동과 환희다. 그러다 발로차고 머리를 치밀어 울퉁불퉁 튀어 나오는 배를 손으로 만지며 촉감으로 생명과 만나고, 점점 활발하게 움직이는 몸짓에 갈빗대를 치받아 깜짝깜짝 놀라는 고통으로도 만났다. 점점 자라는 아가의 몸무게로 배가 땅겨 수많은 날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힘겨운 숨을 몰아쉬다가 산달을 맞는다.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과 창자를 애는 아픔으로 하늘이 하얗게 보이는 죽음을 경험 할 즈음 양수가 터지고, 궁이 열리고, 살갗을 매스로 찢고서야 생명과 대면한다.


그렇게 자식은 어미의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소중한 인연이 된다. 어미는 자식을 그렇게 몸으로 낳아 마음으로 담는다. 어미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이 특별한 경험은 어미들로 하여금 자식에게 집착하고 혼신을 다해 억척같이 자식을 길러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품안의 자식이 안타까워 끝내 떼어내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식으로 키우게도 한다. 이성으로 아는 지식은 어미에게는 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최소한 자식 문제에 있어서만은 그렇다. 그것이 어미다. 그래서 가정에는 지극히 감성적인 어미와 그래도 좀 더 이성적인 아비가 함께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다. 이러한 부모자식의 관계는 그 어떤 다른 대체물로 대변될 수 없는 영원불변의 관계다. 그런데 현대에는 이러한 영원불변 할 것 같은 관계에 변화가 생겨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어미들은 자식을 쉽게 떠나고 자식들은 어미를 구박하고 학대한다. 자식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범죄에 이용해도 그 잘려나간 손가락을 주워 삼키며 자식의 범죄를 덮으려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보다는 좀 더 쉽게 자식을 놓아 버리는 어미들도 늘어난다. 한 가정에 어미는 단순히 살림을 살며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는 존재 그 이상의 의미인 것이다.


어미는 자식에게 영원한 안식처요, 영원한 쉼터다.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든 달려와 안길 수 있는 무한한 보금자리다. 그런데 현대는 어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힘든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힘겨운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내야 하고, 어려운 입시 지옥에서 자식을 잘 이끌어 성공이라는 반열에 세워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 어미들은 어쩌면 내어줄 가슴이 자꾸만 좁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자라 어미의 품을 떠나면 홀로 남은 어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그래서 어미는 다시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미가 여자가 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시선이 있다. ‘어미’에게 ‘여자’는 사치인가! 이 시대의 ‘여자인 어미’들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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