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원칙은 무엇인가.

하은숙 기자 | 입력 : 2018/08/09 [16:09]
▲     © 세종빅뉴스
원칙의 굴레에 갖힌 세종시의 단면을 본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다. 원칙이라는 틀에 또 다른 모순을 만든다.
원칙(原則)이란  어학적 의미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또 다른 의미는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라고 규정된다.
그럼 법칙(法則)은 무엇인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이다. 수학에서는 연산(演算)의 규칙을 말하고, 철학에서는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원칙과 규칙은 어떤 관계인가.
위의 의미를 joke 형태로 해석해 본다면 원칙은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는 상황이면 못 지킬 수도 있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법칙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모순(矛盾)이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세종시는 세종시 출입기자의 광고비 지급을 출입기준 1년 이상을 원칙이라고 하며 불변의 법칙인양 이야기 하고 있다.
언론사의 지역이 어디든, 기자가 어떤 기자든 아무 상관없다.
그저 출입 1년을 기준이라 정해 놓고 원칙이라고 한다.
세종시에 기여, 지역 안배도 없다. 단지 1년이라는 기간이 중요한 것이다.
타 시도에서는 세종시 출입기자를 배제하는 일도 허다하지만 세종시는 이러한 것들은 원칙에도 없다. 정말 중요한 요소들은 원칙에서 배재된 채 단지 기간이 중요한 것이다.

세종시는 세종시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명한 리더싶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아문센은 노르웨이 탐험가로 1911년 16개월만에 남극점을 처음 밟은 사람이다. 이보다 두 달 먼저 출항한 영국 탐험가 로버트 스콧은 이듬해 1월에야 남극점에 닿았고, 아문센은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은 반면, 로버트 스콧은 자신은 물론 전 대원을 잃고 말았다.
이를두고 전문가들은 아문센의 성공 비결을 ‘현지화 원칙에 따른 철저한 준비’에서 찾는다.
아문센의 성공 이후 남극대륙 횡단에 나선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도 아문센의 원칙을 중시했고, 두 차례 남극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절실히 느꼈다.
이를두고, '아문센 원칙'과 '섀클턴 법칙'이라고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이며 현명한 판단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세종시가 정한 원칙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원칙의 굴레에 빠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지 코앞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위한 비전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원칙이 있으니 다른 요소는 중요치 않다. 언 듯 보기에는 이러한 세종시의 태도가 그럴듯해 보인다.
세종시의 원칙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원칙인가. 세종시민과 그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며 세종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민을 위한 일들을 하며, 세종시에 조금이나마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시민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세종시가 고수해야 할 그 어떤 원칙보다 우선해야 할 최고의 원칙이어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 시청의 홍보와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언론사들이 많이 있다.
세종시는 많은 언론인들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들을 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되묻고 싶다.
불공평이 원칙인가? 남이 하면 이것이 마치 원칙인양 법칙인양 다수를 불평등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잘하고 있는 행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언론인들을 존대해주고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소수에게는 특권을 주고, 다수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들을 한다면 이는 결코 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세종시는 다수의 언론인은 배제하고 몇 개의 일간지 및 방송사 기자들에 대해서만 별도의 기자실에 명패까지 달아 놓아주면서, 타 언론사는 이렇다 할 기자실이 없다. 단지 몇몇 기자가 브리핑룸인 정음실에서 기사를 송고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마주 보이는 장소에서 소수는 명패가 있는 자신의 책상에서 다수는 정음실 또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을 마치 당연한 일인양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다수의 언론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말 원칙을 따르고 공평한 처사에 의해 제대로 된 행정을 하고 있는지.
남이 하니 우리도 하면서 불문률인양 행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세종시는 타 시도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행정과 소수의 언론인에 대해 집행되는 많은 광고예산, 그리고 기자실 운영 등 원칙이라며 일간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불문률 같은 특권을 준다.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광고비에 1년이라는 기간 엄수, 명패가 달린 기자실은 아닐 지라도 마음 편히 기사를 쓰고 송고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상대적 박탈감에 오늘도 2선 3선으로 밀려나 있는 다수의 언론인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 주길 바란다.

누가 진정 시민과 함께 하며 발로 뛰고 있는지? 언론사의 name value가 언론인을  평가하는 세종시의  최대 평가 기준인 것인지. 이로 인해 불평등의 함정에 빠뜨리는 일은 없는지.
원칙의 굴레에 빠져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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