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극이야기 30

< “차범석희곡상”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12/12 [19:36]

영화연극이야기 30

< “차범석희곡상”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3/12/12 [19:36]

 

▲     ©충청의오늘

 

제 17회 <차범석희곡상> 시상식이 12월 4일 조선일보 조이 세미나실에서 거행되었다.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차혜영의 인사말은 아버님에 대한 개인의 추억을 전했지만, 한국연극인 후학들 모두가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차이사장은 “아버님은 어찌보면 막무가내고 괴팍한 선배 관객으로 지금같으면 언어폭력 수준으로 연극평을 하셨지만, 후배연극인들은 아버지의 뜻과 애정을 받아주셨다. 아버님 역시 관객과 연극평론가의 예리한 평을 피할 수 없었고 처진 어깨에서 아버지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회고한다. <차범석희곡상>은 살아생전 아끼셨던 칭찬을 아낌없이 베플고 싶은 마음으로 작가 차범석의 사랑임을 차이사장은 전하였다. <차범석 희곡상>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적 차원이 아니다. 1970년대 한국연극계는 기성과 신인을 불문하고 개성있는 극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러나 80, 90년대를 지나면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창작희곡의 전성기는 침체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00년대 전후를 지나면서 창작희곡의 활성화의 인식이 부각되고 창작희곡 공모전이 다수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창작희곡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본격적인 창작희곡 지원책의 변화는 2010년대에 단순히 상금 만의 지급에서 벗어나 공연제작의 기회까지 지원하는 공모전이 다수 등장하였다. <한국문화에술위원회>에서 창작희곡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적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희곡작가 인큐베이팅시스템>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신작희곡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근본대책은 작가의 육성에 있음을 확신하고 중장기 지원책 프로그램개발, 장작지원금지원, 멘토링제도와 중간발표를 통한 관객피드백 기회부여를 실행하였으나 신작희곡 확보에만 관심이 커 신진작가 육성을 위한 중장기 지원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소극장활성화 지원책도 극장운영 지원책에서 벗어나 소극장이 창작희곡 발굴을 주도하도록 <희곡작가 인큐베이터시스템>을 확대해 나가야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거금 삼천만이 수여되는 <차범석희곡상>이 지속되어야 할 의미는 크다. 

 

차범석선생님은 한국연극를 대표하는 희곡작가이다. 1924년 목포 만석꾼의 차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일찍이 예술세계에 눈뜬 감수성이 예민한 천성이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인 서중학교를 나와 연세대학에 진학한 이후 <연희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고 유치진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거울 속에 비춰보고 싶다.”고 한국리얼리즘연극을 추구하는 확신을 가졌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밀주>로 가작 당선되고 다음해 <귀향>으로 당선된 이후 1962년 <산불>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산불>은 한국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이며 한국사실주의 희곡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전환작이었다. 향토색짙은 작품 뿐만아니라 전쟁의 상흔, 구세대 간의 갈등, 전통가치관의 붕괴, 새시대의 도래 등을 차범석은 <불모지>(19570, <성난기계>(1957), <껍질이 깨지는 아픔없이>(1961),<청기와집>(1964), <환상여행>(1972), <꿈하늘>(1987), <통곡의 땅>(1992), <바람분다 문열어라>(1995), <옥단어>(2003) 등 작품으로 답하였다. 50여년의 창작활동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소재와 주제영역을 확대시켜 왔고 1963년 극단<산하>를 창단하여 현대극을 정착시키는데에 매진하였다. 정치적인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희곡을 써야겠다는 창작방향은 우리의 정치 부조리,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시각과 시도로 한국연극계를 풍요롭게 하였다. 희곡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제작, 연출, 평론, 이론. 방송계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섭렵하였다. 대한민국예술원회장, 한국극작가협회 회장, 광화문문화포럼회장, 청주대학교 에술대학장을 역임하셨고 뒤늦게 서울예대에 한국최초로 극작과를 설립하고 교수로 부임하여 희곡작가를 양성하였다. 연극계에 대한 그의 업적은 국무총리상(1969), 대한민국민족문화예술상(1970), 대한민국예술원상(1982), 서울시문화상(1997), 3.1문화상 수상(2005),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2006) 등 다수의 수상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연극계를 끝까지 사랑해 온 애정의 흔적인 <차범석희곡상>은 제 1회 장막부분 수상작 <침향> 이후 올해로 제 17회 수상작 박근형의 <이장(移葬)>에 이른다. 박근형은 1986년 <침묵의 감시>로 데뷔한 이후 2021년 <이장>에 이르기까지 작가이자 연출가, 극단<골목길>대표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박근형은 “무대는 우리들의 삶, 그 현실의 연장이고 우리에게 꿈은 현실의 모순을 이겨내기 위한 진통제”라고 말한다. 생의 밑바닥으로 몸을 던지는 작가정신이 투철한 박근형은 날것의 삶을 포용하고 몸부림치며 그 적라나함을 가감없이 들어내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9),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1999), 백상예술대상(“청춘예찬”1999), 김상열연극상(“선착장에서” 2005), 대신문학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경숙이 경숙아버지” 2006), 대한민국연극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너무 놀라지마라” 2009), 동아연극상 작품상(“모든 군인은 불쌍하다”2016) 등을 수상하였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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