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극이야기 31

<핍박받는 민초들의 슬프고 뼈아픈 시네포엠, 하명중 감독의 “태”>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12/18 [16:31]

영화연극이야기 31

<핍박받는 민초들의 슬프고 뼈아픈 시네포엠, 하명중 감독의 “태”>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3/12/18 [16:31]

▲     ©충청의오늘

 

1980년 ‘서울의 봄’을 지나면서 한국영화계의 판도는 흥행이나 관객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영화예술에 대한 사회인식이 크게 달라졌고 무엇보다도 한국영화인의 의식이 눈에 띄게 변화하였다. 1970, 80년대 대표적인 배우, 하명중도 <하명중 영화제작소>(1985)를 설립하고 <태>(1985)를 제작, 감독하였다. 하명중이 영화감독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형 하길종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형의 유지를 받든 것이다. 1983년 실험성강한 <엑스(X)>로 감독데뷔하고 감독으로서 명성은 민초들의 저항적 시대산물인 <땡볕>(1984)으로 대내외에 알렸졌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 <화분>(1972), <수절>(1973), <한네의 승천>(1977) 등 시대상과 사회문제를 치열하게 다룬 작품에 출연하면서 자신 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는 감독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영화는 국내보다 세계 영화제에 진출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일본 영화평론가, 사또 구니오는 하명중감독을 분명한 메시지와 테마를 추구하는 감독으로 평하였다. 

 

38년 만에 코엑스 메가박스영화관에서 4K 마스터링으로 복원 상영한 하명중의 <태>는 천승세의 소설 <낙월도>를 영화화하였다. 외부와 단절된 낙월도라는 섬에서 악덕지주, 최부자일당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저항을 원색적이며 거친 화면의 격조높은 시네포엠으로 표출하였다.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과 백일성의 <한 줌의 시간 속으로>(1991)처럼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부각한 시네포엠, <태>는 권력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투쟁을 자연의 거친 영상으로 투영한 현실적 시네포엠으로서 차별화된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영상의 아름다움보다 외세로 오랫동안 시달려 온 한민족의 슬프고 아픈 이미지 창조를 고뇌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낙월도의 고통당하는 민초들의 단순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 <태>는 전두환 군부독재의 부당한 국권탈취를 상징적으로 부각하고 한국 토속신앙과 원초적인 우리의 정통적 관습을 한국을 모르는 유럽관객에게 널리 알렸다. 제작단계부터 전두환 군부정권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던 <태>는 당시 공윤의 검열위원장 최창봉의 용기있는 결단으로 무삭제 검열로 통과되었고 재검열의 위협을 피해 하명중은 필름을 들고 해외로 도주하였다. 그의 용기 덕분에 무삭제 <태>를 유럽과 모스크바 한국영화 주간에서 상영할 수 있었다. 

 

오프닝씬은 롱쇼트의 음울한 회색 갯벌의 바닷가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마을의 만신(채희아 분)이 풍어제 굿을 올리고 있다. 악덕지주 최부자(최일 분)일당에게 불만이 있는 아낙네가 풍어제 굿판에서 횡포부리자 최부자는 굿판을 부정타게 한다고 아낙네를 끌어다가 매질하여 바다에 던져 죽여버린다. 대대로 마을의 안녕을 지켜온 만신인 무녀가 최부자의 만행을 모른 채 한 것은 평화로운 낙월도 섬의 어둠을 암시한다. 1920년대 일제시대, 외부와 단절된 섬에서 최부자일당들은 일제와 그 앞잡이들이 조선인을 착취하듯이 섬 마을주민을 속이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외부에 팔아 그들의 이익을 챙긴다. 이를 반대하는 대대로 뱃길을 잡아 온 귀덕아비를 죽이고 마을 어부들도 마음대로 바다를 나가지 못하게 하여 여성들과 함께 산을 개척하는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 먹거리를 통제한 지주들은 비싼 이자 돈을 꿔주고 가난을 핑계로 여성을 강제로 씨받이로 만든다. 평화로운 섬생활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하지만 거센 바다에 죽거나 최부자 일당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들의 비밀을 엿들은 여인이 악덕지주에게 잡혀 거짓으로 스스로 바다에 공양을 받친다고 강제 수장시킨다. 며칠 뒤 바다에 떠오른 그녀의 사체는 철사줄에 꽁꽁 묶긴 몸이었음을 귀덕(이혜숙 분)과 그녀의 연인 종친(마흥식 분)이 발견한다.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살던 집을 불태우고 탈출하고자 했던 귀덕과 종천은 최부자 일당을 쳐 죽이지만, 만신에게 잡혀 '섬을 떠나라'라는 충고를 거부한 채 '바다와 섬과 나는 하나'라며 만신 손에 무참히 죽는다. 악덕지주 일행의 하수인이 된 만신은 섬과 바다를 사랑한다는 종천의 당당한 죽음 앞에서 하늘의 뜻을 거역한 죄업을 피할 수 없어 무아지경의 춤을 추며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라스트씬은 바다가 보이는 바위산에서 하얀 명주 천을 찢어버리는 산고의 고통으로 아이의 탯줄을 스스로 끊고 새 생명의 탄생을 하늘에 축원하며 거친 바다와 태풍의 소용돌에 던져진 낙월도 주민들의 희망찬 삶을 기원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거친 바다와 바람, 잿빛 하늘과 갯벌, 붉은 색 해초 그리고 씨받이로 얻은 자기 아이에 젖을 물렸다고 폭행당해 멍석에 말리는 빨간 고추 위에 벌거벗겨진 채 울부짖는 여인을 힘없이 바라보는 주민들, 탈출하다가 젖먹이를 죽게한 어미는 정신이 나가 볏짚을 자기 아이로 안고 발거벗은 나신으로 빨간 천을 휘감고 온 마을을 싸돌아다니는 여인의 발가벗음은 억압에서 해방이요, 만신이 스스로 발가벗은 육신으로 신을 향해 속죄하는 몸부림은 악덕지주의 하수인이 되어 신의 뜻을 거역한 죄업이다. 땅과 산신을 의미하는 무속의 붉은 색은 하늘의 도움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고기잡이하다가 돌아 온 남정네를 위해 속고쟁이를 장대에 높이 달아 부부합방을 알리는 관습과 귀덕모와 귀덕이 억울하게 죽은 아비의 시신마저 강제적으로 무덤을 파헤쳐 귀덕아비의 원혼을 달래는 초분 의식 등은 하명중이 ‘미의 자연’이 아닌 ‘의미의 자연’으로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투쟁과 하늘을 대신하는 만신을 내세워 확대시키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인식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시네포엠에 의지하는 <태>는 촬영조건이 열악한 섬에서 첫 동시녹음 촬영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정일성 촬영감독의 색채와 앵글, 구도의 시네포엠은 자연풍경의 신비로움과 어두운 극적 분위기를 무난히 표출하였다. 롱숏과 롱테이크의 리얼리티 넘치는 갯벌장면이나 360도 회전 촬영을 보여준 돗배 위의 마을굿씬 등은 리얼리티 이전에 존재론적 현실 공간을 부각시킨다. <태>에 들어난 영상의 의미들은 대립되는 이원화가 있다. 세속과 자연(신의 세계)을 축으로 무녀의 토속적 그리고 마을주민의 풍속성을 중심으로 영상의 1차적 의미를 부여하는 <태>는 한국적 정체성이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작품내용에 걸맞는 김영동의 영화음악은 거칠고 부조화한 일면이 국악의 끈질긴 정서로 관객의 마음을 자극하였고, 영화담론에 걸맞는 2차적 영상창조의 의미를 상승시키는 보편화된 언어로 이해시키는 과제가 남는다. "영화는 그 시대 답답한 심정과 상황을 담아내는 것에 가치가 있다”는 하명중의 영화작가정신은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시네포엠으로 표출되는 <태>의 영상들은 대상을 대표하는 의미의 상징성이지 결코 대상이 갖는 보편화된 의미는 아니다.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개혁을 의미하며 새로운 낙월도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다. <태>의 담론을 마무리하는 귀덕이 탄생한 아이를 받들며 새로운 낙월도을 기원하는 모습과 섬의 전경 그리고 다음 세대의 어린 만신과 춤추는 마을사람들의 군무를 상승적 교차편집을 하였다면, <태>의 담론을 완벽히 마무리하였을 아쉬움을 남긴 한국영회사의  소중한 한국영화 <태>였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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