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지대와 사후약방문

김헌태 논설고문 | 기사입력 2022/08/28 [19:15]

복지사각지대와 사후약방문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22/08/28 [19:15]

  © 충청의오늘

생활고와 투병에 지쳐 수원의 세 모녀가 세상을 등졌다. 60대와 40대 모녀들이다. 암과 희귀병, 그리고 생활고에 복지서비스는커녕 세상에 그 흔한 도움의 손길도 없었다. 유서를 남기고 절망 속에서 세상을 마감하는 그 고통의 순간이 참으로 참담하고 눈물겹다. 세계 무역대국 9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이른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오늘날의 모습이다. “아프리카를 돕자! 필리핀을 돕자!”하면서 방송에는 연일 비참한 외국아이들의 모습이 화면을 통해 등장한다. 이들을 향한 사랑이 정작 내 나라 내 이웃에는 왜 미치지 못하는 가를 생각할 때 무엇인가 모순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복지사각지대에서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위기가정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이런 유사한 비극적 사건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한다며 난리를 피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모두가 그렇다.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뒤늦게 호들갑인지 묻고 싶다. 사후약방문 행정과 뒷북행정에 복지 분야를 따라갈 분야가 없는 것 같다. 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복지행정은 있으나 체감복지는 탁상에만 있을 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4일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나 장기 체납, 금융 연체 등 34종의 위기정보가 입수된 이들 숫자는 약 544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복지부가 선별한 위기가구 발굴 우선순위 명단은 12만3,000명,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인원이 8만2,000명이다. 정부는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거주지가 불분명한 위기가구를 실종자에 준해 소재를 파악하기로 했다. 경찰이 아동, 치매 노인, 정신장애인 등을 법적 근거에 의해 소재를 파악하는 것처럼 위기가구도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현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전문가 의견도 청취했다. 

 

이미 각 기초지자체 중 95.2%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을 설치했다. 그러나 인력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54%만 충원된 상황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면서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 배치됐던 간호 인력이 코로나19 대응 업무 쪽에서 많이 배치돼 있다. 정부는 복지전문가 간담회의견을 토대로 행정안전부, 경찰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협업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개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탁상행정에 그치고 임시방편에 그친다면 비극의 악순환은 거듭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은 8년 전인 지난 2014년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 자살사건과 너무나 유사하다. 당시 세 모녀는 60세와 30대 모녀 일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메모를 남겼다. 큰딸의 만성질환과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번 사건도 어쩌면 이렇게 유사한 사건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당시에도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해 돕는다며 난리를 피웠다. 요란한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고 마치 복지사각지대를 단숨에 없애버릴 것 같은 전시행정이 펼쳐졌다. 지난 2015년에는 실직한 가장이 서초동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후 도주하다 체포된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상대적 빈곤이 불러온 비극적인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는 잠재되어 있는 위기가정이 너무나 많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늘 복지정책의 보호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위기가정들은 수원 세 모녀나 송파 세 모녀사건처럼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실 빚으로 사는 가정들이 너무나 많다. 불안정한 직장도 마찬가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들의 고통이 곳곳에서 목도된다. 겉으로만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지만 톡 건들면 터질 것 같은 가정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풍요로울 것 같은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미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구조로 향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다.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지 못한 계층들은 늘 불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들도 그런 세상이다. 

 

여기에다 시골이나 중소도시, 대도시 할 것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일자리를 남의 나라 사람들이 와서 차고 앉아 있으니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이른바 3D업종이라고 해서 기피업종이라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일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기형적인 일자리 구조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와 경제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안한 사회와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을 양산하고 위기가정으로 내몰고 있다. 

 

심지어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해 대한민국의 1인 세대가 946만1,695가구로 급증해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40%를 넘어서고 있다. 1,000만가구가 나 홀로 사는 가구이다. 특히 70대가 가장 많다. 불안정한 가구형태가 아닐 수 없다. 질병에서부터 정신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상성을 벗어나고 있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약칭 기초생활보장법)이 가장 획기적으로 변화된 계기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개정법이 제정 시행되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허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위주의 정책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재난지원금을 줄때도 그래왔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위기가정들이 이를 넘보지도 못했다. 

 

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수급 이력 없는 주거지 미상 위기가구도 유관기관과의 정보연계 등을 통해 끝까지 찾아내어 지원토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허겁지겁 이것저것 처방전을 내놓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들해져 온 것이 지난 과거의 복지행태이다. 사후약방문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민들은 지금 세 모녀의 비극에 고통의 눈물을 짓고 있다. 1인 가구를 포함해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가정들도 더더욱 그렇다. 모든 정책과 행정이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세 모녀를 추모하기 위해 빈소에 시민과 정계인사 등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뒤늦은 관심과 추모는 뭔가 개운치 못한 여운을 남겼다. 국민들이 이런 고통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눈만 뜨면 권력 다툼과 갈등, 대립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아가 불법과 탈법, 비리로 이전투구를 일삼고 있다. 등 가려운데 발바닥을 긁고 있다.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송파 세 모녀 사건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발생한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모진 환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법이 없거나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눈물과 헌신적 봉사자세가 결여된 때문이다. 곳곳에 복지단체가 즐비하고 복지재단이 들어서 있다. 복지관 등에는 지원 예산과 후원이 넘치는데도 빈익빈부익부 복지로 고통 받는 국민들이 위기 속에서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전면적인 대수술이 시급하다. 복지재단을 없애고 복지관도 정리하고 복지체계를 전면 개편해 복지예산이 실제 어려운 이웃,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예산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복지예산이다. 올해 복지예산은 교육과 고용분야를 포함해 무려 200조가 넘는다. 하지만 100원을 주면 90원은 인건비 등 각종비용으로 중간에서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10원만 돌아가는 복지정책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복지 분야의 정리정돈 없이는 진정한 복지정책이 위기가정에 제대로 투영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복지시스템은 곧 직거래장터와 같은 실질적인 복지직거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송파에 이은 수원 세 모녀사건이  뼈아픈 교훈으로 던져주고 있다. 말로만 복지사각지대근절이란 사후약방문격인 탁상복지행정은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다.     

 

 

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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