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제국의 제왕들 19

<제 22세 단군 색불루임검의 “삼쥬신 국가 선언”> 김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3/05 [09:30]

환인제국의 제왕들 19

<제 22세 단군 색불루임검의 “삼쥬신 국가 선언”> 김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4/03/05 [09:30]

▲     ©충청의오늘

 

색불루단군은 B.C. 1285년 세습단군이 아닌 제후로서 쿠테타를 일으켜 21세 소태임검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임검을 선위받은 단군시대의 첫 제후이다. 색블루임검은 날을 가려 7일 동안 재계하고 향과 축문을 여원홍에게 내려 여원홍이 백두산 천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제사에 올린 서고문(誓告文)에 이르기를 “소자 단군 색블루가 천제의 아들로서 경건하게 하늘을 공경하며 제사하도록 하겠나이다”하고 제후가 아닌 환인제국의 아들로서 선언하였다. 이어서 “삼신의 명을 받아 넓은 은혜와 큰 덕이 삼한 오만리(환인제국) 땅에 이미 베플어져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는 은혜를 함께 누렸기에 여원홍을 보내어 삼신일체 상제의 단에 서고문을 올리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색블루임검은 새 임금의 등극을 빛내 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면서 무궁토록 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고 해마다 곡식이 풍년이 들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이 많아지도록 지극한 뜻을 서고문에 밝혔다. 5월에는 삼한을 삼쥬신으로 반포하였다. 정통사학에서는 중국 황하강지역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삼한(삼쥬신)을 고조선의 삼쥬신이 아닌 중국이 고조선에 세운 진한, 마한, 변한이라고도 말하는데, 즉 중국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삼한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고조선이 분열, 멸망한게 아니라 고조선의 제후왕인 색불루가 쿠테타를 일으켜 고조선을 삼쥬신으로 개명하였을 뿐이다. 오히려 이 시기에 고조선은 중국에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다스렸다. 삼쥬신은 진한(辰韓)을 신쥬신(진조선, 眞朝鮮)이라하여 임검이 직접 통치하며 삼한을 모두 관할하였고 마한(馬韓) 땅은 여원홍에게 맡기고 변한(卞韓)을 불쥬신(번조선, 番朝鮮)이라 하여 서우여에게 맡겠다. 우리의 고대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참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고 혼란스러운 정사의 기록때문에  고조선 한 시기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색블루 임검은 해마다 2월이면 마한에 가서 머물렀는데, 백성이 근면하도록 지도하였고 마한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신이 직접 통치한 진한에 많은 곡식을 바치던 폐단을 없앴다. 9월에는 장단경에 행차하여 묘(廟)를 세우고 제후였던 부왕 우현왕에게 제를 올렸다. 은나라가 때때로 고조선에 불충하게 응하자 구한(9제후국)의 군사를 이끌고 색블루단검이 친히 은나라를 응징하였다. 은나라가 굴복하지 않고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저항해 오자 여러차례 격퇴시켜 은나라 도읍까지 점령하였다. 이에 은왕이 굴복하여 화친할 기회를 주었지만, 거짓된 마음으로 움츠리다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켜 색블루단검은 끝까지 은왕을 추격하여 승전의 하례를 받아내었다. 색블루임검은 변한(번조선)의 백성을 점령지 은나라 땅에 이주시켜 목축과 농사를 짓게하였고 고조선의 위세를 변방에 크게 떨치게 되었다. B.C. 1280년 색불루임검 6년에는 신치 육우가 청하길, 길림의 아사달은 천년동안 도읍할 땅이 틀림없었으나 대운이 이미 다 지나갔으니 이제 왕기가 서려있는 영고탑이 백악산보다 더 나은 곳이니 다시 성을 쌓고 백안산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임검은 새 도읍에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은나라 왕, 무정은 아사달을 방문하여 대단군을 배알하고 지난 날의 반란 사건을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며 정성을 다해 조공을 바쳤다. 색불루임검 20년에는 남국의 군세가 강해지자 남쪽을 지키는 엄독홀을 시켜 정복하였다. 이곳은 은나라 국경과 가까워서 여파달에게 군사를 주어 그곳의 유민과 합세하여 여(黎)국을 세우도록 하였다. 여국을 세워 서융과 함께 고조선 백성이 은나라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사니 삼쥬신의 위세가 매우 강성하여져 색불루임검의 교화가 멀리 항산의 남쪽 지방까지 미치게 되었다. 

 

색블루 36년(B.C. 1250년)에는 변방의 장수 신독이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자, 임검이 잠시 영고탑에 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일로 많은 백성들이 영고탑에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영고탑은 동북 지방의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B.C. 1238년 고조선의 제후로서 첫 제왕이 된 색블루임검이 영웅적인 전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황태자 아홀이 뒤를 이어 23세 제왕에 등극하였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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