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싫어요!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기사입력 2014/04/21 [07:00]

나도 싫어요!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입력 : 2014/04/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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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성폭력과 관련된 기사가 매스컴을 달구는 바람에 도대체 메스미디어를 접하기가 겁이 났었는데, 요즘에는 가정폭력이 연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폭력은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가하는 무력이다.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언어적인 것이든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원인은 자신의 성취되지 못한 욕구의 표출이라고 본다. 폭력의 행위는 상대를 향해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인 것이다. 자신의 실수, 자신의 무능력, 자신의 우매함, 자신의 트라우마와 관계한 분노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힘을 가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자가 나타나면 거리낌 없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폭력(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좀 넓은 의미의 원시적 본능 id와 관계하는.. 으로 정의하자)적인 성향이 있다. 다만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나 형태가 다를 뿐이다.

상담프로그램에서 만난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아이는 등치도 또래 친구들보다 커서 6학년은 족히 되어 보였고 목소리도 걸쭉해서 큰 소리로 말하면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렸다. 아이들이 다급한 소리를 내며 그 아이를 보건실로 데리고 오면서 처음 만났는데 아이의 팔뚝에서는 제법 많은 피가 줄줄 흘렀고 이내 바닥에 고였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순간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감정을 추스르며 119를 불러 아이를 병원으로 태워 보냈었다. 그랬던 아이가 다음 학기에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아이의 팔에는 10cm이상은 족히 될 만큼의 커다란 흉터가 나 있었다. 어찌된 일이었냐고 이제야 물으니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그냥 현관 유리문을 주먹으로 쳤더니..”한다. 왜 그랬냐고 묻는 물음에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별거 아니라고 한다.

아이의 집은 조부부터 아버지까지 주먹을 쓰는 집안이었다. 아이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자신한테 잘 해 준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기 소원은 폭력을 쓰지 않는 거란다. 그런데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쓰게 되고 꼭 후회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아이가 너무나 측은해서 한 참을 아무 말도 잇지 못한 기억이 난다. 나는 폭력이 되 물림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폭력성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폭력적 성향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성질이 까칠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마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기내면의 소리에 민감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마치 글쟁이에게 춤꾼이 되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폭력성을 발현하지만 그 방법은 각자가 가신 성향에 따라 달리 표현되기 때문이다.

춤을 추던, 디자인을 하던, 음악을 하던, 무술을 하던, 스포츠를 하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감추어진 속내를 표현하는 것인데, 그 또한 폭력적 성향의 승화(승화昇華, 자아(自我)의 방어 기제의 하나로 정신 분석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충동ㆍ욕구를 예술 활동, 종교 활동 따위의 사회적ㆍ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치환하여 충족하는 일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만 성향이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에 더 적응되었다는 것 뿐, 글을 쓰는 것 또한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일종의 폭력성을 글로 승화시켜 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생각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많은 폭력사건(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까지..)들의 근저에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본다.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성취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부모들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러한 무지가 계속해서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아이처럼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아이도 안다.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지를 배우지 못해서 그냥 살았고, 그렇게 살다보니 그러한 행위가 일정부분 인정을 받은 것이 강화되어 자신의 삶의 한 형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언제까지 사회가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사회문제에 방관할 것인지 정말 안타깝다. 처벌은 가해자의 몫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자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내 몰린 인생은 누가 책일 질 것인가!

 

[칼럼=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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