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오현주(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기사입력 2013/12/03 [07:27]

페미니스트

오현주(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입력 : 2013/12/03 [07:27]
 
▲      ©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발표한 예측에 의하면 2013년 1월의 세계 인구는 71억 명이라고 발표했다. 세계의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이 지구상에는 남자, 여자가 있을 뿐이다. 고단샤의 KISS에서 연재되고 있는 로쿠하나 치요작의 만화에서는 양성인(Intersexual,후타나리)들의 이야기도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단조로운 성(sex)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성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모순적이며 무지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마다 “나는 너를 잘 안다”는 말을 쉽게 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실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인 나도 여자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나의 앎은 그저 내가 체험한 것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주제를 잡고도 오히려 나와 다른 성인 남자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자에 대해 얘기했을 때보다 더 망설여졌는데, 그 이유는 여자인 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미묘한 감정들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제시한 ‘여자’라는 주제는 어쩌면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사실 여자를 다루는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여자가 과거 산업혁명이전처럼 남편의 노동이 가정 경제의 주체로서 온전히 인식됨에 전혀 의의가 없었을 때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최소한 세상은 조용했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세상에 나오면서(사회활동) 어쩌면 남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왜 이렇게 설쳐대!, 여자들이 뭘 한다고 차를 몰고 나와!, 여자들이 뭘 안다고!, 여자가 살림이나 잘 하지!,..”이처럼 남자들의 “여자가 여자가”라는 비하발언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일부 여성계에서는 남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자신들의 영역에 경쟁자적 입장에서 여자들이 침투하는 것이 불안해서 이를 거부하는 행동이라고 했고, 또 일부에서는 경제력이 약한 자신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준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말없이 일만하지 자기주장까지 펼치는 여자가 낯설고 보기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이중성을 꾸짖고 있다. 나도 이 주장에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사실 여자도 만능의 남자를 원하듯이 남자도 여자에게 만능이기를 원한다. 살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내조도 잘하고, 시댁에도 잘하고, 더불어 돈도 잘 벌고...그런데 그런 여자는 드물다(혹여 있을지 모르는 한 여성을 위하여).

여자인 아이는 여자로 길러진다. 예뻐야 한다. 착해야 한다. 얌전해야 한다. 음식을 잘 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 등.. 그런데 비해 남자는 씩씩해야 하고, 잘 놀아야 한다.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등등, ... 남자와 여자의 성향을 비교해 보면 남자는 상당히 외향적이고 능동적 기질을 강조하는 반면 여자는 내향적이고 소극적이 기질을 강조하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여성의 기질을 선호하고 기대한다. 여자가 상당히 활동적이거나 남성적 성향을 보이면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대 성(性)에 대한 근본적인 이미지형성이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형성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여자인 나도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일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여자가 자동차를 매우 서툴게 운전하면서 진로를 방해할 때나,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횡설수설하며 막무가내로 우기거나, 남자에 대한 심한 의존성으로 인해 모든 자랑과 자존이 그 남자나 아이에게 있을 때, 등.. 이런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하여튼 여자들이란’이라며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권신장과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위치가 현재 위기의 때라고 하지만 여자들도 위기의 때를 살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가, 가정경제가 여자를 과거의 모습으로 살 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경제구조 속으로 나와 보지만 20여 년 동안의 경력단절은 그들을 단순 육체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고용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잡무가 대부분이며, 같은 위치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자의 1/3에 지나지 않는 임금을 받는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이미 전 칼럼 “남자는 울지 않는다”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그 중에 설령 용기를 내어 늦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전문직을 갖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나이 제한에 걸리고 경력 부족에 또는 학력제한에 걸려서 그것들을 극복하는데 최소한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여자나이는 아무리 빨라도 50대 초반이 되는 것이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여자들이 남편의 눈치만 보게 되고 혹시나 자식이 자라서 어떻게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더불어 잘 살고자 마음먹은 남자가 남편이 아닐 때는 알콜중독으로 인한 폭력, 폭언, 무시, 정신적. 심리적 학대 등의 가정폭력 상황으로 내 몰리지만 자식의 양육문제로 인해 그 수많은 고통의 세월을 눈물을 삼키며 참고 살게 되는 것이다. 개중에는 결국 고통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 보지만 딸린 자식에, 병든 몸에, 빈곤으로 인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다시 지옥 같은 집에 들어가거나 한 부모가정 쉼터를 전전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거리의 부랑자처럼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여자들의 현실인 것이다. 이렇듯 힘없고 배경 없는 여자들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는 그런 나약한 존재에서, 그 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방안을 이 사회가 반드시 찾아 주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에게 사회적 기반을 구축해서 그들의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맞춤식 교육방식을 채택해 전문화된 교육과 연계된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평생교육차원에서 많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그야말로 교양 수준에 지나지 않고 그것들을 이수한다고 해도 사회에서 뚜렷한 일자리가 마련되거나 그에 부합하는 수입이 발생하지는 못한다. 또한 여성가족부나 여성인력개발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일자리 창출관련 교육프로그램도 제한 된 나이에 (나이제한 없다고 하지만 결국 젊은 사람만 체용 함)한정된 인원만 선정하여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거친 후 그것도 몇몇 사람들만 취업이 되는 현실이고 보니 그 문도 매우 좁다. 이처럼 여성정책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취업의 문은 오히려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날마다 치솟는 물가와 교육비는 이처럼 여성들의 정신적, 육체적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옥죄이는 족쇄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가족부에서는 여성들의 취업현실을 반영한 좀 더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지원정책으로 현실적으로 교육과 수입을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현재 유아를 두고 있는 가족 구조에서 여성들은 미래에 큰돈을 버는 형태의 수입구조적 일자리는 지금 당장 분유 값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미래를 위해 현재에 투자하는 형태가 아닌 단기간에 작은 수입이라도 생길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 해주어 당면한 경제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시급한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 미래지향적인 전문화 교육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서 전문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점진적인 교육 방안이 마련되면 지금은 비전문적이고 짧은 시간밖에 투자 할 수 없는 현실과 수입구조가 맞아 질 것이고, 점차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좀 더 많은 여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지금의 단 순 작업에서 당당한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런 형태의 것들이 또 하나의 미래지향적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각 분야에서 실효를 거두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피해자로서 여성이 아닌 당당한 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여성도 남성과 함께 경쟁력을 갖고 경쟁구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그때야 비로소 양성평등, 성 평등이라는 주제로 같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살 때 지역이 살고 사회가 살고 더불어 국가가 건강해 질 것이다. 현 정부에서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민생을 돌아봐 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오현주(미경)
 

오현주(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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