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첫 번째 주인

- 홍성남 시인의 세한도 연작시(2)

홍성남 시인 | 기사입력 2013/11/26 [07:27]

세한도 첫 번째 주인

- 홍성남 시인의 세한도 연작시(2)

홍성남 시인 | 입력 : 2013/11/26 [07:27]


▲ 홍성남 시인     © 하은숙 기자


 
 
 
 
 
 
 
 
 
 
 
 
 
 
 
 
 
 
 
세한도 첫 번째 주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홍성남 시인
 
세한도 받아든 우선의 눈물
스승에 대한 그리움인가
부패한 조정 향한 분노인가 
빗물 되어 저절이 흘렀다

추사 칭찬 어쩔 줄 몰라
권세와 이익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世波)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초연함
성찰의 고백으로 말했다
 
만하집 대운산방집 황청경세문편
스승 계신 제주도로 보낸 일
구구한 작은 마음에서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 
마음 따라 그리했다 말했다

선비의 몸 같은 서책(書冊)
어지러운 권세 맞지 않기에
저절로 맑고 깨끗한 곳 찾아
제자리로 돌아간 것 뿐
다른 뜻이 없다 말했다

조정 미움과 권력에 밀려
유리안치 된 스승 돕는 일
후안 두려워 엄두 못 낼 때
변치 않는 의리의 고마움
갈필의 세한도 그리게 했다

발문에 속마음 드러낸 추사
잘 살다 못살아 보면
주위 인심 알 수 있는데
예전 처세 칭찬할게 없으나
지금 처신은 어느 성인도
칭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년)은 역관 이었다. 추사의 제자로서 북경에 여러 차례 왕래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중국의 문사들과 교류가 깊었다. 저서에 은송당집(恩誦堂集)과 해린척소(海隣尺素)가 있다. 은송당집은 임금이 자신의 시를 읊어준 은혜에 감격하여 지은 문집 이름이다.

우선은 추사로부터 세한도를 받고 그해 동지사 이정응을 수행하여 연경에 갔다. 이듬해 정월 중국인 친구 오찬(吳贊)이 베푼 재회축하연에서 청나라 명사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청나라 학자 16명으로부터 제문(題文)과 발문을 받았다.

우선은 장목(張穆)의 제문을 표지삼아 그림과 제발을 한 축의 두루마리로 표구한 뒤 가져 왔다. 이를 다시 제주도로 보내 추사에게 보여주었다.

우선의 집안은 대대로 역관을 배출하여 출세한 가문이었다. 9대에 걸쳐 무려 30여 명이나 되는 역관이 나왔다. 역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한역관(漢譯官)을 가장 많이 배출했다.

우선도 한역관으로서 열두 번이나 중국에 갔다. 우선의 언어는 중국인 못지않은 달변과 문장으로 중국에서도 유명하였다. 우선은 헌종으로부터 전답과 노비를 하사받았다. 철종 때에는 특명으로 영구히 지중추부사의 직을 받았다. 우선이 임금으로부터 은총을 입었다는 것은 그의 문집을 비각(秘閣)에서 간행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의 문집 운송당집(恩誦堂集)은 조선에서는 본인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청나라 지인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국내외에서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문을 12권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표지의 제목과 서문, 찬(贊)을 모두 청나라 문인들이 짓고 써주어, 그의 교유 범위를 짐작케 한다.

우선은 추사의 제자답게 시 뿐만 아니라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김정희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그 건립연대를 추정할 때 고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할 정도였다.

우선은 신분이 역관의 중인이었다. 하지만 주로 사대부들과 사귀었다. 특히 스승 추사와의 만남은 세한도를 낳게 했다.

 
* 홍성남 시인  프로필
시인 언론인 정치인
강북경제연구소 대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시집-茶 그리고 인연, 장무상망

홍성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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