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효과

충북분석심리 연구소 오현주(미경) | 기사입력 2013/11/18 [22:21]

플라시보효과

충북분석심리 연구소 오현주(미경) | 입력 : 2013/11/18 [22:21]
 
▲ 충북분석심리연구소  오미경 소장     © 한국in뉴스 하은숙 기자

오늘 뉴스에서 일본의 60대 이상 노인들이 영정사진을 찍는 것이 큰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을 전한다. 예전부터 수의나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은 오히려 장수를 불러 온다는 속설로 인해 많은 노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우리는 고령화 사회, 고령사회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사실 1999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전체인구의 14%가 노인인 경우)‘에 들어섰고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2015년도에는’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굳이 통계적 수치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노인의 연령으로 인식된 노인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처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노인으로 인식하는 연령대가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재미있는 발표가 있다.

예를 들면 18~22세는 47세 이상, 23~35세는 55세 이상, 75~80세는 71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세대가 자신들을 노인으로 분류를 한다고 해도 정작 60대들은 자신들이 노인이 아니라 ‘제2의 낀 세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노인으로 불러지는 것에 상당히 불편해 하며 실지로 40대 못지않은 활동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노인으로 인식되는 의식적 연령이 높아지고 있고 사실상 신체적인 노화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는 것으로 보면 사실상 지금의 60대가 “제2의 낀 세대”를 주장함에 큰 무리가 없는 듯싶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경제적 활동 면에서 분명히 노인으로 분류되어 많은 부분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그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그들은 우리사회에서 국내법상 고령자 촉진법에서는 55세 이상, 국민연금법에서는 60세 이상, 노인복지법에서는 65세 이상에 속하는 연령은 노인이라고 본다면 분명히 노인 인구는 급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노인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것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당장 50대를 앞둔 나의 경우만 해도 77세의 노모가 계시기에 그 노모의 하루하루가 걱정이 되고 사실 정말이지 경험하고 싶지 않는 노모의 뇌혈관성 질환에 항상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다가올 나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의 욕심으로만 본다면야 나의 노모가 큰 질병 없이 무탈하게 사시다가 때가 되면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소망하지만 그것이 어찌 소망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사실 지금의 노인들은 과거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수하고 수십 번의 죽음의 문턱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자식들의 삶을 지켜온 우리들의 모체인 것이다. 우리의 노인들은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식들을 위해 생명이라도 내어 줄 마음으로 자신의 헐벗음을 돌아보지 않고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우리 부모들의 희생을 딛고 그들의 삶을 양식으로 삼아 지금 여기 이렇게 자신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기에 나의 부모는 우리의 지울 수 없는 과거이며 씻을 수 없는 아픔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부모들의 현실은 분명히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일시적 방관(일시적 방관이라고 믿고 싶다)으로 인해 최근에는 폐륜 적 존속살인 범죄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고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비단 그 문제가 진정 가해자 한 사람만의 문제인가 하는 것에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고민해 봐야한다. 존속살인(존속살인의 원인과 대책에 관하여는 다음 칼럼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예정임)의 대부분의 원인이 금전문제로 인한 갈등이며 그 가해자는 아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이제는 천륜을 논하기에는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 우리의 노인들의 과거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6.25를 겪었고 일제 강점기도 겪었다. 그들은 보리 고개도 경험했으며,
 
 IMF로 인한 자식들의 혹독한 고통도 함께 경험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지금 우리가 경제대국 세계 11위로 지속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데는 분명 지금의 우리 부모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지금 비록 나의 부모가 나에게 경제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형태로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내어준 빈 껍질’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부모가 내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고 심정적으로 마음에 흡족하지 못했다하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나의 부모는 자식의 현재 고통이 모두 부족한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고 추운 겨울 한파에도 한 칸 골방에서 난방도 끼니도 줄여가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식에게 짐이 되는 현실의 고통을 끊기 위해서 34분당 1명의 노부모가 자살로 사망한다는 통계를 보면 정말이지 노인문제는 나의 문제며, 내 이웃의 문제며,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노인들은 그것이 자식을 위한 지금의 최선이고 더 내어주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선택한 그들의 사랑인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부모를 무심함으로 방치해도 되는가에 대한 물음을 지금 스스로에게 야 할 것이다.
 
우리의 노인들은 이제 보상받아야 한다. 그것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는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노인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분명히 국가가, 사회가 반드시 진정성을 갖고 정책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회문제인 것이다. 노인문제는 국가가 비전을 갖고 한 번 시도해 보는 그런 의미의 정책이 아닌 죽고 사는 필사의 문제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노인들이 4고(고독고(노인 성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함), 무위고(無爲苦), 소외, 역할상실)에 시달리는 없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 덧 붙여 노인들이 질병이나 기초생활자금의 부족에서 더 이상은 고통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언제까지나 그 노인의 자식들의 책임만을 운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노인문제에 더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기초수급생계급여’를 지급하는 문제에 있어서 좀 더 현실적인 방법에 의한 대상 선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실상 과거 ‘기초수급생계급여‘(이 부분의 논란은 잠시 접고라도)라는 제도가 없던 때를 비교하면 그나마 지금 정부에 고맙다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우리와 함께 이웃하고 있는 노인들 중에서 이마져도 해택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노인들이 있으며 그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알 고 있다. 그들이 방치되는 이유가 ‘기초수급생계급여지급‘ 대상자의 자격에 맞지 않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제도인가 싶다. 제도라는 것. 법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이미 알듯이 제도의 불합리성이라는 명제를 우리는 결코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에서도 비록 그 제도권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자식의 방치 등과 같은)그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노인들도 보듬어 줄 수 있는 제도적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법에도 일반법과 특별법이 있듯이 그러한 특별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가진 자에게 더 주는 그런 정책이 아닌, 법적 제도를 교묘히 악용하여 덕을 보는 그런 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이 아닌, 법의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자신을 학대하며 자살을 꿈꾸는 삶이 처절한 그런 아픈 노인들을 위한(비단 노인문제만을 아닐 것이지만) 진정한 살아있는 정책을 바라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정책은 나아가 나를 위한 정책이다. 개인에게도 미래가 보장될 때 스스로 용기를 얻고 고통을 감수해 나가는 것처럼, 국가의 정책에도 미래가 보장될 때 국민은 지금의 현실을 감수해 나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의 정책이 비록 많은 부분 부족하고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좋은 대안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래본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돌아보고 꼼꼼히 보살피는 세심한 정치를 펼칠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앞으로는 좋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현실을 견디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정치의 플라시보효과를 기대해 본다. / 충북분석심리 연구소 오현주(미경) 소장

충북분석심리 연구소 오현주(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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