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극이야기 10

<품위있는 고상한 연극, “두 교황”>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09/26 [18:48]

영화, 연극이야기 10

<품위있는 고상한 연극, “두 교황”>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2/09/26 [18:48]

  © 충청의오늘


바티칸의 역사를 뒤흔든 위대한 이야기, 앤서니 매카튼 원작 <두 교황>은 자진 퇴위로 세계 를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라칭거)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베르고글리오)와의 실화를 극화하였다. <명성황후>, <영웅>으로 한국대중들에게 그 신뢰감을 받는 뮤지컬 전문극단 에이콤이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두 교황>은 잘만들어진 연극이요 오랜만에 본 품위있고 고상한 연극으로 감동을 준다. 2019년 영국에서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졌고 언론인이자 극작가요 소설가로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세 차례나 지명되었던 원작자 앤서니 매카튼이 각색을 맡아 2019년 12월 영화로 개봉하였다. 감독 역시 <시티 오브 갓>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연출로 넷플릭스가 제작하여 세계에 보급하였다. 두 교황역은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앤서니 홉킨스와 <캐링턴>으로 제 48회 칸느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너선 프라이스가 각각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교황 프란치스코를 연기했다. 

 

꼭 봐야 할 영화순위로 등재된 <두 교황>은 다시 연극무대로 영국과 동시에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있다. 두 교황역은 자진퇴임한 베네딕트 16세 역으로 신구, 서인석, 서상원 그리고 새 교황 프란치스코 역으로 정동환, 남명렬이 더블캐스팅되었다. 필자가 본 <두 교황>은 신구와 정동환이 출연한 공연이었다. 영화와 연극 두 매체의 표현방식의 차이성은 분명히 있지만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극 <두 교황>의 극적 분위기는 영화와 다를바 없었다. 두 교황역의 앙상블은 무대에서 실지로 생활하는 두 교황의 모습을 보는 것같아 TV화면이나 영상에 익숙한 관객들은 원로연극인의 연기의 세계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확인하였을 것이다.

 

연극의 시작과 끝은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의 연주와 함께 두 교황의 취임식이 진행되고 에필로그 성격의 축구관전은 두 교황의 인간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주제적인 장면이다. 종교극이지만 무교인 필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성격과 성향이 다른 두 교황의 ‘틀림’ 아닌 ‘다름’을 서로 교감하고 이해하며 진지하게 신앙을 숙고하는 과정을 종교적 메세지전달보다 두 교황의 인간적인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기때문이다. 그 결과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은퇴를 고민하던 추기경, 베르고글리오(정동환 분)는 베네딕토 교황(신구 분)으로부터 로마로 오라며 편지를 받고 교황을 방문한다. 교황과 현재 가톨릭 교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후 베네딕토 교황은 베르고글리오의 사임도 수락할 수 없고 그가 제기하는 문제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이후 교황은 베르고글리오에게 본인의 사임 이유를 이야기하며 그가 후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베르고글리오는 자신이 과거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신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재자의 만행을 묵인한 행적때문에 교황자격이 없음을 고해성사한다. 교황 역시 바티칸 성직자들이 연루된 횡령과 뇌물, 성추행 사건 등 온갖 스캔들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괴로워하였지만 자신이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을 고해성사한다. 결국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 베네딕토 교황은 자진사임하고 예수회 출신으로 개혁과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교황으로 취임한다. 

 

연극 <두 교황>의 영화스튜디오 셋트처럼 완벽한 스펙타클한 미쟝센을 재현한 한국 스텝진의 기술력에 감탄하지않을 수 없다. 혹자는 로얄티 계약공연에 의한 창조작업이 아니라 장인 역할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재현된 무대미쟝센과 대소도구, 분장, 의상, 조명, 영상, 음악, 음향 등 스텝진의 기술력은 거의 완벽한 장인들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의 적절한 영상장면과 헬리콥터 이륙을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의 돌아가는 날개그림자로 자연스럽게 장면전환하는 매끄러운 무대전환 그리고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한 무대에 동시적으로 보여주면서 넘나드는 영화편집기법의 활용이 신선하다. 그러나 ‘천지창조’의 천장벽화가 ‘최후의 만찬’의 벽화로 바뀐 것 등은 김민영 연출과 윤호진 예술감독의 한계가 보인다. 그것은 영화에서 보여준 의미있는 장면과 무대표현들을 가벼이 여겼다는 것이다. 특히 두 연기자의 능력을 본의아니게 축소시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두 교황이 방문한 성지나 교회에서 신앞에 왜소함을 보이도록 큰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연극무대에서는 점진적인 조명의 변화로 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왜소하게 보여할 장면에서 관객을 향해 큰 동작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몇 번 등장하는 광야 앞에 선 베르고골리오가 신 앞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에 대해 고민하는 중요한 장면들이 있는데, 연극에서 그 장면의 하나는 고해성사하면서 젊은 시절 자신의 연기를 하는 그 단상의 위치에 선 베르골리오의 모습이다. 단순한 고해성사가 아니라 광야를 바라보면서 신앞에 고해성사하는 연기가 필요하다. 또한 두 교황의 심리적 갈등의 변화를 영화는 침묵과 카메라워킹등으로 표출하지만 연극무대에서도 배우가 대사를 놓치는듯한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강약의 연기와 과장된 표정연기로 심리적 갈등을 돌발적으로 표출할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사실주의연기를 고집하고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를 추종하는 대부분 한국의 연기자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역중 인물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나 사실 그 연기술은 절대적이지 않다. 스타니슬라브스키도 그의 제자 박탄코프가 주장하는 관객의 숨소리를 의식하는 시위의 연기도 필요하다는 언급에 찬성하였다. 그래서 자존심강한 두 교황의 역할을 수행하는 두 연기자는 날선 연기대립보다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인간미가 넘치는 재미를 관객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다. 허스키 톤의 신구에 비해 마이크를 통한 정동환의 높은 대사 톤은 관객과 그에게 부담이 될법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수녀의 역할과 연기는 공감이 간다. 보수적이지만 서민적인 라칭거 교황 앞에서 고상함을 의도적으로 깨는 브리지타수녀(정수영 분), 진보적이지만 보수적인 일면이있는 베르고골리오 옆에서 신앙생활의 정도를 주장하는 소피아수녀(정재은 역)의 연기는 두 교황의 인간적인 일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데 절제있는 연기로 도움을 주었다. 그 절제는 사실 교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원로연기자 앞에서 움추린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반면에 베르고골리오의 젊은 시절과 교황의 비서역을 수행한 1인 2역의 역할을 한 조희는 두 수녀보다 좀 더 편하게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뮤지컬배우로서 자신있게 정극을 경험하는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김수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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