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

홍성남 시인 | 기사입력 2013/11/21 [12:28]

세한도(歲寒圖)

홍성남 시인 | 입력 : 2013/11/21 [12:28]
▲ 홍성남 시인     ©하은숙 기자






















송백(松柏)의 지조 말하는 세한도
초라한 집 한 채 고목 몇 그루
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네
그림과 글씨와 글의 삼위일체
서화일치 추사 예술의 극치
 
 
제주 유배지 못살포 인고의 세월
절친한 벗 김유근 간 후 아내마저 떠나고
날로 기승부리던 반대파 핍박에  
한양 벗들 모두 흩날려 멀어져 갈 때
고도(孤島)에서 의지 할 벗은 서책 뿐 이었다 
 
 
스승의 처지 알고 뜻 받든 추사의 제자 우선     
1843년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문庫)
이듬해 하장령 편찬의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북경(北京)에서 가져와 제주로 보내 추사 감동케 했네
 
 
우선의 청징한 연모에 놀란 추사 
신새벽 마른기침 초의 산차(山茶)로 달래며 
세한도 그려 발문(跋文) 적어갔다
날 차가워 다른 나무들 시든 뒤
소나무 푸르다는 걸 안다 했는데
한결 같았던 그대와 나의 관계
전(前)이라고 더 한 것도 아니요
후(後)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다
   
어렵게 구한 서책 그 정성 그 연모 
따르던 3천 제자 중 으뜸 이었다
권세에 주었다면 출세 보장 되었을 텐데
아무 힘없던 제주 유배객에게 준 초연함  
송백(松柏)의 우선에게 해줄 게 없던 추사
송나라 소동파 언송도(偃松圖) 떠 올려
깊은 가슴 뭉클한 감정의 눈물 쏟았다
 
 
칼칼한 해서체 20행 295자 편지글
우선(藕船)은 보아라
작년에 만하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올해는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 보내 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는 책 아니고
천리만리 먼 곳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거듭하여 구한 것이니
세상의 도도한 인심은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을 찾는 것인데
이들 책을 구하려고 온 마음과 힘 들였거늘
이것들을 그들에게 갖다 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 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는 나에게 갖다 주었다
 
 
사마천(司馬遷)이 이르기를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사이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관계가 멀어지는 법이라 했다
그대 역시 세상의 그런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인데
어찌 그 속에서 초연히 벗어나 권세를 잣대로 나를 대하지 않는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절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하여
세한(歲寒)이 되기 이전과 이후에도 푸르지만
특히 날 추워진 이후의 푸르름을 칭송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하기 전이나
곤경에 처한 후에나 변함없이 잘 대해주거늘
나의 곤경 이전에 그대는 칭찬할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聖人)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추운 시절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 지키는
송백(松柏)의 굳은 절조(節操)만이 아니다
세한(歲寒)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이다
오호라!
 
 
한(漢)나라 시경(詩經)에 후덕하고 인심이 있을 때
급암과 정당시 같은 사람도 그들을 찾는 빈객들과
더불어 흥(興)하고 쇠(衰)하였으니
하비의 적공이 방을 써 붙인 것은 세상인심이
때에 따라 박절하게 변함을 탓하는 것이다
슬프도다
 
 
양반과 중인의 계급 초월한 선비의 연모
인류의 공존과 행복 가로막는 제도와 관습
수직적 사고 털어버린 수평적 디지털 소통
공자와 자로 같던 추사와 우선의 애틋함 
갈톳한 우리 삶에 툭 던지는 한마디 
스승의 선물에 감읍한 제자의 아릿한 말 
 
 
세한도 한 폭(幅)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진실하고 절실 했습니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익을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世波) 속에서 초연히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작은 마음에서
스스로 하지 않으려 해도 그리할 수 없었을 따름 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서책(書冊)은 비유컨대
몸을 깨끗이 지니는 선비와 같습니다
 
 
어지러운 권세는 걸맞지 않기에
저절로 맑고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간 것 뿐 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번 사행(使行)길에 이 그림 가지고
연경(燕京)에 들어가 표구(表具)를 하여 
옛 지기(知己)들에게 두루 보이고 시문(詩文) 청할까 합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그림 보는 사람들이
제가 참으로 속세를 벗어나고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초월한 것처럼 여길 것입니다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과분하신 말씀입니다
 
 
국보 180호 10미터 한축의 두루마리 
청(淸)나라 문인(文人) 열여섯
추사와 우선의 고고한 연모의 인연 위해
즐거이 송시(頌詩)와 찬문(讚文) 썼다
 
 
훗날 우선은 스승 추사의 승천 듣고
한 편의 시(詩)로 텅빈 가슴 달랬다   
평생에 나를 알아준 것은 수묵화이었네   
흰 꽃심의 난꽃과 추운 시절의 소나무
스승 추사와 제자 우선의 장무상망
권세와 이익에서 초연히 몸을 뺀 연모
어려울 때는 바로 옆에 있는 이가 진정한 벗
지금 당신의 옆에는 그런 벗이 있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그러한 존재인가
 
 
* 홍성남 시인  프로필

시인 언론인 정치인

강북경제연구소 대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시집-茶 그리고 인연, 장무상망

 

홍성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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