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은 지혜다.

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기사입력 2014/09/04 [22:36]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은 지혜다.

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 입력 : 2014/09/04 [22:36]
▲ 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하은숙 기자

어떤 물건이 혼연일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적막한데 홀로 존립하여 변하지 않고 두루 운행하여도 지치지 않는다. 가히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되는데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억지로 도(道)라고 이름 붙이고 하는 수 없이 위대하다고 부른다(도덕경 25장) 노자는 우주 만물의 생성을 과학의 근거가 아닌 명상체험을 통해 꿰뚫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도 우주는 있었고 세계는 존재했다. 관념 탐구는 인간의 마음을 이롭게 하지만 과학(자연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의 도전은 세계를 파괴시켰다. 인간이 과학인식을 시작하면서 우주도 세계도 순수성을 잃었다. 인간이 규정짓는 잣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학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치달았다. 자연의 일부일 수 있었던 인간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자연과 과학은 악연이다. 과학은 촬스 다윈(Charles Darwin)으로 하여금 진화론을 주창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출생을 창조나 진화로 규정짓는 것은 종교나 과학의 몫이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존재하고 있고 인간 두뇌는 선택이던 자연발생이던 진화를 거듭하면서 삶을 변화 시켰다.

농기구를 만들면서 편리성과 더불어 욕심이 생겼다. 무기를 만들면서 욕망이 싹텄다. 죽이고 빼앗고 쟁취하는 희열 속에서 인간은 더욱 사악해졌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서 서열을 정했고 없는 자는 없음으로 비열해 졌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의 질서도 파괴했다. 그날 먹을 양식만 취하던 것에서 저장하고 보관하기 위해 더 많은 살육을 자행했다. 무자비하게 살육된 가축들은 재화로 바뀌었고 축적된 재화는 편리를 꾀하는데 쓰였다. 움직임이 줄어든 육체는 비만해졌고 먹 거리는 쌓여만 갔다.

먹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닌 유희가 되었다. 수치를 가리면 족했던 의복은 권위와 사치로 전락했다. 동물의 위협이나 추위로부터 보호의 역할을 했던 집은 부의 상징으로 변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마음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 문화의 발달은 재화를 필요로 한다. 욕망이 커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진다. 상대적 빈곤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몬다. 인간이 눈으로 바라보는 현상세계는 끝없이 나락으로 내 몰 것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달할 것이고 인간의 욕망은 더 높은 바벨탑을 쌓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욕망은 파괴를 부른다. 강제로 빼앗고 죽이고 학대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인간이 동물이 된지는 오래다. 강국은 약소국을 속국으로 만들고, 부강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횡포를 부린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죽이고 중소기업은 도매상을 죽인다. 도매상은 소매상을 죽이고 소매상은 개인을 죽인다. 부모는 자식을 죽이고 장성한 자식은 노부모를 죽인다. 욕심으로 이웃을 죽이고 욕정으로 어린 생명을 빼앗는다. 이제는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한다. 언제까지 끝없는 욕망에 둘 것인가! 발전은 이제 되었다. 지금이라도 발전을 멈추는 것이 그나마 살 길이다. 어지러운 나라가 잘 다스려진 나라를 공격할 때 멸망한다. 사악(邪惡)을 가지고 정도(正道)를 칠 때 멸망한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자가 순리에 따르는 자를 칠 때 멸망한다. 한비(韓非,?~BC 233)가 진왕(秦王)을 위해 쓴 글이다. 진리다. 인간이 본성의 선함을 유지하지 못할 때 세계는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는 길 만이 지혜가 아니다. 참된 지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음에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수 있으며, 자연도 인간에게 그 삶의 한 편을 내어 줄 것이다. 




오미경 충북분석심리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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