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정신이 던지는 의미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19/04/13 [07:38]

▲     © 한국시사저널

 자유와 민주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하던 4.19혁명이 올해로써 59주년을 맞았다. 비합헌적인 방법으로 헌정체제의 변혁과 정권교체를 결과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혁명(革命)으로 규정하여 이를 4월 혁명, 4·19혁명, 4·19 학생혁명, 4·19 민주혁명 등으로 불리었으나, 5·16 군사쿠테타 이후 군사정권에서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혁명(革命)‘으로 환원되었다.


 4.19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오직 학생들의 항거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정의감과 순수성이 넘치는 위대한 혁명으로 세계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1960년 대한민국 4.19민주혁명이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과 1776년 미국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과 더불어 세계 4대 민주혁명으로 손꼽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에 이어 59주년을 맞는 4.19혁명, 또 32주년을 맞는 6월 민주화항쟁이 있다. 자유와 민주, 정의를 위해 불의에 항거하던 위대한 정신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초석이 된 위업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꽃을 피우게 된다.


 올해 특히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3.8대전민주의거’가 마침내 올해 3월 8일 국가기념식을 갖고 역사적인 의미를 공식화했다. ‘3.8대전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학생 1,000여명이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독재에 항거했던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으로 대구의 ‘2.28민주의거’, 마산의 ‘3.15민주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을 인정받지 못해왔다. 올해 오랜 세월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지 못해온 ‘3.8대전민주의거’의 국가기념식이 개최되고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어 매우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당시 4.19혁명의 일련의 과정을 짚어보면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2.28대구 학생민주화운동에 이어 대전 고등학생의 3.8민주의거, 3.15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어 마산에서 벌어진 3.15의거가 그 뿌리를 잇고 있다. 1960년 3월15일 제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이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도 가했다.


 하지만 1960년 4월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국민들의 분노도 극에 달하게 되어 부정선거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된다. 이것이 바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960년 4월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세종로-태평로 일대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한다. 평화행진을 하면서 학교로 돌아가던 중 폭력배 등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드디어 다음날인 1960년 4월19일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한다.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60년 4월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다. 1960년 4월26일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총격과 폭력으로 자행된 강제 진압과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했다.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 직에서 하야했다. 사망 185명, 부상 1,5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무고한 학생들 심지어 중학생까지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이었다. 바로 이 숭고한 희생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4.19혁명이 갖는 의미는 대구, 대전, 마산에서 전국적으로 번지며 자유와 민주를 위해 항거한 학생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해마다 이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올해만큼은 그 의미가 더욱 배가되고 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도 4.19혁명의 연장선상에서 그 궤를 함께 하고 있어 그러하다.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3.8민주의거일의 국가기념일 공포기념 4.19혁명과 열린 세계의 시’라는 심포지엄이 자유와 민주를 꽃피운 4.19 혁명의 위대한 정신문화를 조망하며 시와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충남대 명예교수인 송백헌교수는 ‘4.19혁명과 시인의 함성, 그리고 그 이후’라는 주제발표문에서 4.19세대 시인들 중에 인구에 회자되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수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 시에서 신동엽은 4.19혁명과 동학혁명을 통해 민주의 끈질긴 생명력과 민주애의 열망을 확인하고 이것을 억압하는 모든 비본질적 요소들이 사라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송백헌교수는 설파했다.


 올해 4월 19일에는 4.19혁명 세계 4대 민주혁명 대행진이 서울광화문에서 펼쳐진다. 민주화 산업화 융합 대축제도 함께 벌어진다. 영국, 미국 , 프랑스에서도 참가한다. 4.19혁명 제 59주년을 맞는 이번 4월은 이처럼 다채로운 이벤트행사로 그 위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모두(冒頭)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수한 학생들의 숭고한 피와 값진 땀방울을 밑거름으로 이룩한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오늘날 바로 서서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갈지(之)자 걸음을 걷고 있는지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4.19혁명정신을 상기해보는 4월이다. 침묵하는 시(詩)나 침묵하는 자유의지, 비겁한 외면은 분명 4.19혁명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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