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하게 되는 수 많은 생각의 흐름들이 모여서 한 시대의 종교. 철학. 사상의 흐름과 주류를 형성하는 것인데 史家들이 논하는 한 시대의 종교.철학.사상적 論辯은 복잡하고 有機的인 것이어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脈絡, 상호 영향을 끼치는 관계, 當時代 국민들의 생각들의 흐름, 대중과 민중의 삶의 흐름 등이 종합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철학이요 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사상이요 뼈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종교이다. 그러나 종교 성직자들은 이 생각의 흐름을 이용하여 신도들을 抱攝한다. 戰國時代 魏文侯 때의 政治家 西門豹는 鄴의 留守로 임명되자 長老들을 불러 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을 물었다. 河伯娶婦 이야기를 듣고 河伯娶婦를 주도한 大巫, 小巫, 三老, 衙前을 모조리 물 속에 던져 버린다. 백성들의 귀한 처녀를 供物로 바쳐야 黃河의 대홍수를 막고 모든 백성이 행복 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자신의 귀한 딸을 바치지 않으면 苛酷한 세금을 부과 했던 것이다. 河伯神이 아름다운 처녀를 원한다는 發想도 駭怪하거니와 백성들에게 세금을 수탈하여 자신들의 利得을 취하기 위하여 河伯娶婦를 정당화 했던 것이다. < 『史記』 「滑稽列傳」 > 이것이 대표적인 宗敎로서 誣民하는 방법이었다. 後漢 以後 三國時代에 오두미도에서 강력한 종교 세력을 형성했던 孫恩이 운명을 직감하고 바닷가에 들어가 스스로 自投하자 五斗米道의 신도들이 孫恩이 水仙이 되었다고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孫恩을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가 죽었다는 것이다. <恩窮感 乃赴海自沈 妖堂及妓妾謂之水仙 投水從死者百數 『晉書』 「孫恩傳」 > 또한 부녀자가 임신하면 강물가 근처에서 출생을 하게하고 갓 태어난 아기를 물 속에 던져 떠오르는 아이는 키우고 가라앉는 아이는 죽였다는 것이다. <州極西南界至蜀諸民曰 獠子婦人姙娠七月而産 臨水生兒 便置水中 浮則收養之 沈則棄之 『博物志』 권 2> 葛洪의 『抱朴子』 에는 吳나라와 越나라에는 禁呪之法이 있는데 전염병이 돌면 呪術師가 환자와 함께 同寢하여 전염병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치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邪魅山의 精靈이 환자의 집에 침입 하였기 때문에 환자에게 깨진 기왓장을 던져 귀신을 쫓아내고 환자가 거주하는 집을 태워 버렸다는 것이다. <吳越有禁呪之法 甚有明驗多行氣耳 知之者可以入疫之中 與病人同床而九染.......此是氣可禳天災也 或有邪魅山精侵犯人家 以瓦石擲人 以火燒人屋舍 葛洪 『抱朴子』 內篇 卷5 「至理」> 조선 후기에도 이러한 似而非 宗敎가 繁盛한다. 아이를 죽지 않을 정도로 굶주리게 하여 식욕을 자극한 후 竹筒에 좋은 반찬을 넣어 아이가 그 竹筒 속을 뚫고 들어 가도록 유도한다. 이때 아이를 단번에 죽여 죽통 뚜껑을 닫아 아이의 혼이 죽통 속에 머무르게 한다. 아이의 혼이 들어 있는 죽통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영업을 한다. 배가 곯았던 아이의 귀신에게 좋은 음식으로 유인하여 사람에게 병이 생기도록 저주하기도 하고 앓던 이를 치병하기도 한다 <『星湖僿說』 卷5 萬物門 魘魅蠱毒 (古典國譯叢書 『星湖僿說』 2, 民族文化推進會)> 이러한 似而非 宗敎의 弊害는 1930년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東亞日報」 記事는 이렇게 보도한다. 1933년 5월 16일 서울 중림동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유아의 머리가 발견된데 이어 21일 만에 한 묘지에서 아이의 몸뚱이가 발견 되었다. 20여일에 걸쳐 수사 끝에 윤모씨가 간질병을 앓는 아들이 어린이의 뇌를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벌인 사건이었다. <「東亞日報」 2009년 12월 15일 字> 무수한 생각의 흐름은 생각의 흐름이 의지 할 수 있는 依支處와 믿고 信奉할 수 있는 歸依處를 원한다. 그것이 偶像이다. 基督敎의 십자가나 부처님 像의 출발점이 바로 생각의 흐름이 依支處를 구하고자 하는 歸依處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나가는 생각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헤쳐 나간다. 방향을 잃은 대중의 생각의 흐름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흘러 간다는 것이다. 그 대중의 생각의 흐름을 抱攝하는 기술자가 정치인이고 종교인인 것이다. 개인의 생각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을 이른바 gaslighting , 洗腦한다고 하고 군중의 생각의 흐름을 이용 하는 것을 종교화, 정치화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을 주도한 히틀러는 처음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主唱하였다.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순수 게르만족이 아닌 유대인들을 제거 해야 한다는 것이다. 毛澤東의 文化革命에서 강조한 것은 자본가와 지배 계급이 하층 국민들을 搾取한다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지배계층을 제거해야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중에 정권을 잡은 후투족들은 투치족과 후투족 중도파들을 80만명 학살한다. 이때 학살을 자행하는 政府 閣僚는 투치족이 없다면 르완다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없어질 것이다. 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캄보디아의 폴포트는 지식인, 전문가, 도시 거주자를 적으로 간주하여 박해 하였다. 폴포트 정권은 고문, 굶주림, 질병을 통제의 무기로 사용하여 1975~1979년 동안 200만명을 학살 하였다. 농민과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건설 하겠다는 욕망에서 killing field 가 恣行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는 지식인은 물론 손이 하얀 사람, 안경을 쓴 사람 등 무분별한 기준으로 殺戮을 恣行했던 것이다. 五斗米道의 孫恩 집단은 자신들의 주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은 그들의 아들 딸 손자까지 잔인하게 살해 하였다. 그들은 적대세력에 대해서 엄격한 식별을 시행하여 철저한 살육을 恣行하였던 것이다. <今誅殺異己 有不同者 戮及嬰孫 『晉書』 「孫恩傳」> 히틀러나 毛澤東, 캄보디아 킬링필드가 행했던 살육의 기원은 이렇게 深源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사라져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무수한 생각의 흐름이 원하는 의지처와 믿고 信奉할 수 있는 歸依處를 버릴 때 비로소 지극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宗敎의 語義인 religion은 라틴어 religio에서 나온 것으로 ‘다시 묶다’ ‘다시 생각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자신의 정신 세계를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信奉하는 것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는 것을 소위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종교가 인류에 끼친 영향은 종교간 갈등으로 인한 국가간 反目과 전쟁, 殺戮이 그 주류를 형성해 왔다. 이것은 人間의 神格化가 아닌 神의 人格化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神은 不可測量의 無限한 宇宙의 道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으로 재단하고 요리하여 절름발이 神을 수 없이 量産해 왔기 때문이다. 禪家에서 말하는 父母未生前의 道를 알지 못하고 天下之道를 안다고 하는 者들이 종교 聖職者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종교는 마치 宇宙라는 거대한 칠판에 점을 하나 그려 놓고 그 점만을 믿고 의지하며 信奉하고 있는 行態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라는 거대한 칠판에 점 하나 그려 놓고 다른 전체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종교라는 본연의 진리에 어찌 다가갈 수 있겠는가 ? 역설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信奉하는 자신의 종교를 제외한 모든 것이 진리인 것이며 진정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의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철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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