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국민

이철진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8/08 [23:00]

국가와 국민

이철진 논설위원 | 입력 : 2024/08/08 [23:00]

 

  © 충청의오늘

 

 국가는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고 국민의 존재 이유도 국가에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搾取하고 국민이 국가의 正統性을 부정 한다면 국가와 국민은 共倒同亡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하여 어떠한 治道를 行하여야 하고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어떠한 役活을 수행해야 하는지가 定立 되어야 한다.

 漢孝文帝가 河上公에게 말한다. “天下가 넓다지만 寡人이 다스리지 않는 곳이 없으며 天下의 백성들이 寡人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소!  따라서 寡人은 백성들의 부귀빈천을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있소!”

 이에 河上公은 두 손을 두드리더니 虛空中에 떠올라 文帝를 내려다 보고 말한다. 

 “지금 위로는 하늘에 오르지 않고 중간으로는 사람들의 허물이 되지 않으며 아래로는 땅을 딪고 있지 않은데 어찌 내가 당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어떻게 당신이 나의 부귀빈천을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있겠습니까?”

 文帝는 河上公이 神人임을 깨닫고 수레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었다.

<漢文帝時...... 帝曰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

朕足使人富貴貧賤須臾 河上公卽拊掌坐躍...... 而止於玄虛  良久俛而答曰 

今上不至天 中不累人 下不居地 何民之有?

陛下焉能令余富貴貧賤乎 帝乃悟之 知是神人 方下輦稽首禮謝.....

葛玄  老子 『道德經』 序訣   『四部要籍注疏叢刊』 老子 上   引用>

 『莊子』  「在宥篇」 첫머리에 이렇게 말한다. 

천하를 있는 그대로 放任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天下를 다스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聞在宥天下 未聞治天下>

 호랑이를 키우는 操鍊師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이로 주지 않는 것을 鐵則으로 한다.  반항하는 생명체가 호랑이의 野性을 忿發시키기 때문이다. 무릇 생명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는 難賊이라고 할지라도 대들기 마련이다. 하물며 인간이 자기 자신의 自尊感과 自律性을 침해 당하고서 무심하게 있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歷史以來 인간은 인간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堯舜以後 善治를 행하였다. 그러나 莊周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릴 수 있다면 천년 후에는 반드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斷言하였다. 治世者는 국민의 마음을 法令 道德에 얽매이게 하여 拘束하지만 국민들은 法令의 올가미를 벗어나 오히려 이를 利用하고 操作과 便法을 동원, 人心을 不純하게 하여 끝내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단계에까지 이른다고 喝破하였던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고 사회전체가 주인인 나라를 사회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과 사회전체가 주인이어야 하는 체제가 실제로는 治世者가 주인인 체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司馬遷은 말한다. “법이 통치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백성들의 善惡, 良否까지 다스릴 수 있는 근본적인 장치는 아니다. 法網이 가장 치밀했던 때 간교함과 속임수가 가장 많았다.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과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극에 달하자 결국 관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들은 법망을 뚫어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법령과 제도 이전에 인간 스스로의 自尊感과 自律性이 있고 예의 도덕 이전에 인간의 純粹性情이 있는 것이다. 법령과 제도를 중시하고 예의 도덕을 宣揚하는 것은 물고기를 물 속에서 꺼내어 땅 위에 올려 놓고 서로 물을 끼얹으며 保濕을 유지 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법령과 제도, 예의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애초에 물고기를 물 속에 놓아두고 상호간에 서로 彼我를 잊고 無心하게 살게 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魚相忘乎江湖>

 인간의 心性은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操從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심성을 변혁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治世는 인간의 심성을 조종하여 억압하는 機制가 되는 것이다. 법령과 제도가 인간의 자존감과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인간 본래의 고유성과 심성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주장하는 민주주의도 옳지 않거늘 집단 체제를 통하여 인간 고유의 심성인 자율성을 침해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群衆들은 賢明한 群衆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前漢의 政治家 汲黯은 東海太守에 임명되어 治世를 하면서 법령과 제도 하나도 바꾸지 않았지만 국가는 興盛繁榮하였던 것이다. <其治責大指而已  不苛小  治務在無爲而已 弘大體不拘文法  司馬遷 『史記列傳』  권120 「汲鄭列傳」    汲黯篇>

 새로운 제도 법령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을 옥죄는 또다른 足鎖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治世者는 먼저 국민을 다스린다는 생각을 버려야하고 국민은 다스림을 받는다는 下心을 버려야한다.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賢衆이 愚衆이 되는 愚를 犯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천하에 존재 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사람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自然放任으로 놓아둔다면 이것이 최고의 治世가 되는 것이다. 

 

이철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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