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을 위한 우선순위를 바로 알라

김헌태 논설고문 | 기사입력 2021/01/10 [11:00]

국민들을 위한 우선순위를 바로 알라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21/01/10 [11:00]

▲     ©한국시사저널

 
 야구경기 도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경기가 중단된다. 잠시 비가 멈추길 기다린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장이 비에 젖지 않도록 대형 방수막을 황급히 덮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순연되지 않으면 비가 멈춘 뒤 경기가 재개된다. 도로교통에 있어 아무리 달리던 차도 빨간 불 신호등에는 우선 일단 정지를 해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학교에서 숙제가 주어지면 다른 모든 일을 제치고 숙제부터 해놓고 놀도록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들도 그렇게 교육해 왔다. 운항 중인 선박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샌다면 긴급히 구멍을 막고 나서 운항을 해야 한다. 구멍이 난 배를 운항한다며 어리석은 행위로 그 결과는 난파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배설의 욕구가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일을 멈추고 배설행위를 우선 마무리하고 난 뒤에 다음 일을 이어가게 된다. 이는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단한 사례들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한마디로 엉망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국민을 위해서도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코로나19 비상시기인 지금은 마치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막연히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 잠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경기를 재개하기 위해서라면 방수막을 덮고 경기장이 젖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새해 정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는 바로 이런 점에서 황급히 방수막을 덮고 나서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는 많은 사회·경제적 피해가 뒤따르지만 그렇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피해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확산을 막기 위해서이다. n차 감염으로 3차 유행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이른바 궁여지책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동안 그토록 자랑하던 K방역의 허상도 보게 된다. 백신늑장확보로 국민 불신을 자초해 놓고도 오히려 큰 소리 치는 정부이니까 할 말을 잃게 한다. 지금 같은 고통스런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백신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늦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이 숨막히는 통제 시점에서 당연하다.


 서울 동부구치소가 1,200명이 넘는 확진자로 아비규환이다.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절박한 호소문까지 철창 밖으로 보일 정도이다. 단위규모로는 신천지 감염사태이후 최다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비행기를 띄워 우한교민과 이라크 근로자 등을 해외에서 이송하며 엄청난 생색을 내기도 했다. 여기에다 진단키트 자랑을 하며 난리를 피웠다. 이런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이 과정에도 마스크 부족으로 한바탕 소통이 벌어지자 마치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양 복지부나 교육청 등 일부 지도층들이 만용을 부리던 모습도 보았다. 동부구치소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관리한 공직자들은 법무부장관이건 누구건 모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잘 하도록 지시했다“, ”무증상 확진자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물 타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일련의 처리 과정을 보면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비겁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누가 잘못을 했고 누구 책임인지가 나오질 않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이니 답답한 방역사례이자 책임소재이다. 마치 사오정놀이를 하는 것 같아 보일 정도이다.


 답답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1,000명을 오르내리던 확진자가 다소 줄어들자 벌써부터 진정기미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3단계에 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매서운 강추위로 인한 선별진료소 운영시간 단축 등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정기미를 보인다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경제활동에 숨통이 트인다면 이 역시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주변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을 확보해 코로나19를 관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백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해 놓고도 오히려 백신스트레스는 정부가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는 식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백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주장은 당연하며 국민을 대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선순위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행위라는 지적이 강하다.


 여기에다 초기부터 해외유입자들을 차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참으로 어처구니 행태로 인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해외유입자가 9일 현재 무려 45명, 10일 34명에 달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비상 상황이후 지금까지 해외차단을 하지 않고 지속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라 안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방역대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외유입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자가당착이다. 10일 현재 5,726명의 해외유입자 누계이다. 이는 전체 6만8,664명 확진자 가운데 8.3%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들어오고 있는데도 노 젓고 있는 격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대만의 T방역이 참으로 부럽다. 지금은 ‘문 열어 놓고 모기 잡는다’고 난리 법석인 형국이다. 이러고도 국민들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책임을 전가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사고로서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의원과 전직시장 등 6인 회식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대전시민이 이들을 방역과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까지 했다. 당사자들은 6인 회식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엄중한 시기에 지도층의 일탈(逸脫)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강력한 방역수칙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식당들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며 비상상황이다. 매장 이용제한에 직격탄을 맞은 카페업주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홀 영업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라는 절규이다. 이런 업종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점이 작금의 상황이자 문제이다.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는 17일까지 2주간 연장되면서 국민들의 경제적 타격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다면 휴·폐업도미노현상으로 인한 서민경제 피폐화는 명약관화하다.


 지금 국민들은 안정된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우선순위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당연히 잡아야 할 악마 바이러스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해외유입의 차단책임은 정부에 있다. 무슨 배짱으로 해외유입자들을 계속 받아들이고 우리 국민들이 감염확산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의 T방역과 비교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의료진들의 열정과 헌신은 최고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그렇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뭐래도 국민들의 우선순위는 백신접종이자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인 정상적 경제활동이다. 대통령이 누구이건 서울시장이 누가 뽑히든 부산시장을 누가 하던 국민들에게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정상모리배들은 더 더욱 아니다. 신물 나는 검찰개혁타령도 아니다. 당장 오늘 먹고 살아야 하는 일터를 지켜야 하는 절박함이 우선순위이다. 이 순간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며 눈물을 흘리는 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 내 가족과 내 이웃의 안위를 지켜주는 자야 말로 진정한 리더 임을 자각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처럼 때를 놓치는 어리석음은 지양해야 한다. 국민들을 위한 우선순위를 바로 알고 나라경영을 똑바로 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모든 위정자들의 당당한 책임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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