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안 된다

김헌태 논설고문 | 기사입력 2020/07/13 [09:07]

자살은 안 된다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20/07/13 [09:07]

  © 한국시사저널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의 독보적인 1위이다. 2020년 복지부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2018년 26.6명으로 2017년보다 2.3명 늘어났다. 그것도 2003년 이후  OECD 국가 중 12년 연속 자살률 1위이다. 2018년 자살자수는 하루 평균 자살자 수는 38명이나 된다. 노인자살률도 1위이다. 심지어 청소년들의 자살률도 심각하다. 연령대별로 보면 자살자 수는 50대(2812명)가 가장 많고, 자살률은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하여 80세 이상(69.8명)이 가장 높다. 연령대별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30대와 70대 이상 연령층에서 가장 높다. 청소년(10~24세) 자살률은 8.2명(2016년)으로 열 번째로 OECD평균(5.9명)보다 1.4배나 높다.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53.3명(2016년)으로 OECD회원국 중 가장 높고, OECD평균(18.4명) 보다도 2.9배 높다. 자살의 이유로는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 31~60세는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자살률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게 나타나는 나라이다. 이런 불명예를 무려 10년 넘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안고 산다. 자살예방이라는 처방을 내놓고도 엄청난 국가적 사회적 손실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의 자살은 엄청난 사회적 충격파를 던져왔다.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거명하지 않더라도 인기연예인부터 기업인,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경주시청의 철인3종 경기 선수가 상습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인기연예인들의 자살도 때로는 SNS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무엇보다 유명 정치인들의 자살은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유명 정치인의 자살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왔다. 이는 역사에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동경의 대상이 되는 화려한 삶과 명예를 갖고 있는 공인들의 자살은 누구보다도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직격탄을 던지게 된다. 자살의 이유가 그 무엇이든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천륜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참으로 허망함을 던져준다.


 사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늘 행복하거나 즐거울 수만은 없다. 희로애락이 늘 상존하며 인생을 고해와 같다고도 했다. 솔로몬 왕은 잘 먹고 잘 살았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던진 말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토로했다. 그야말로 인생무생이다. 그 헛된 삶 속에도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내재한다. 비록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삶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돈과 명예, 권력 모든 것을 쥐고 흔들며 최고의 순간을 누리는 것 같지만 무가치하게 이를 활용한다면 그 헛됨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하지만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모든 이들의 등불이 된다면 이는 기쁨과 보람이 배가될 것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절망 속에서도 오늘의 희망을 잃지 않고자 하는 깊은 뜻과 가치가 담겨있다. 생로병사의 길은 인간이면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해가 뜨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황혼을 맞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잘났던 못났던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좌절과 자포자기, 절망의 순간들이 없을 수는 없다. 누구나 잘잘못이 있을 수 있다. 인생의 시행착오와 실수, 오류는 늘 있을 수 있다. 고뇌도 있을 수 있다. 막다른 골목이나 벼랑 끝에 서 있을 수 있다. 주변의 질시와 비난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잘하면 칭찬도 받지만 잘못을 하면 꾸중도 들을 수 있다. 늘 칭찬만 받을 수는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고통스런 환경에 처하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말처럼 극복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어느 영화의 한 구절에 ‘절망보다는 차라리 분노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자살이라는 절망은 결코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19의 암울한 사태가 젊은이들의 취업대란 물론 기존 직장인들의 실직대란까지 불러오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긴급재난지원금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장사가 불황을 겪고 있다. 그나마 생활 속 거리두기라고는 하지만 지역감염이 확산되는 요즘 모두가 불안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야말로 혹독한 환경에서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 WHO는 현재 상황에서 코로나 19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그 어떤 것 하나 희망적인 요소들이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부동산정책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은 숨 막힐 정도이다. 취업을 통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정을 책임지는 서민들은 경제난으로 인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 이른바 ‘투잡·쓰리잡’이 유행이다. 몸이 부서져라 뛰고 또 뛰는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이 난국을 견뎌내고 있다. 절망보다는 차라리 분노를 택하고 있다. 비록 30대의 자살률이 높고 50대의 자살자수가 많은 나라이지만 말이다.


 자살은 생명체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끊는 행위, 영원한 이별을 쉽게 선택하는 것은 안 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번 서울 시장의 자살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처럼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들을 ‘멘붕’에 빠져들게 하는 자살은 공인이건 개인이건 그 어떤 이유로든 정말 안 된다. 심각해져가는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시금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긍정적 사회분위기 조성과 삶의 질 향상 등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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