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사 충민공 양지, ‘겸사복’ 왕의 친위대 무관 재직 재조명

표절사 충민공 양지 부조묘 제향 봉행

하은숙 기자 | 입력 : 2019/11/17 [16:49]

▲     © 한국시사저널


[한국시사저널=하은숙 기자] 표절사 충민공 양지(이하 충민공)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와 고증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충민공은 1583년(선조 16년)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기 전인 1579년(선조 12년)에는  ‘겸사복’이라는 왕의 친위대에서 호위무관으로 활동 하는 등 뛰어난 무예를 인정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임진왜란 때 충신 충민공 양지 장군의 427주기 제향이 지난 14일(음력 10월 18일) 충남 청양군 운곡면 모곡리 표절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54호)에서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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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을 주관한 남원양씨충민공파운곡종중에서는 특별히, 이번 제향 시 양씨중앙대종회와 한국국학진흥원의 역사자료 고증을 통한 심층 자문을 얻어 대일본 외교정세가 경제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 시국 속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이 같은 충민공의 자취를 추가로 발굴해 선양했다.


  또한, 충민공의 증조모는 세종대왕의 옹주(왕의 외손)로 ‘세종대왕 족보’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충민공 양지(1553~1592)의 본관은 남원이며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하고 적성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삭녕군수로서 삭녕성(지금의 경기도 연천) 전투에 참전하여 왜군을 상대로 용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정조 20년(1796)에 이조판서로 증직되었고, 충민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충절을 기리기 위한 붉은 문인 정려가 내려졌다.


  1860년 온양에 사우를 지었으나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고 위패와 정려 현판을 청양군 모곡리 후손들이 보존해 오다가 1958년 현 위치에 표절사를 재건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정려 현판은 표절사 삼문에 현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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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절한 날을 기려 매년 음력 10월 18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양승보 운곡종중 회장은 “평소에도 표절사가 후손 및 일반인들에게 호국정신 함양을 위한 훌륭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올해 제향 소감을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의 남원양씨 종친들과 군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해 충민공의 호국정신을 받들었다.


한편, 부조묘(不祧廟)는 불천지위(不遷之位)를 제사하는 사당을 이르러 부조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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