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언론과 당당한 언론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19/11/01 [21:53]

▲     © 한국시사저널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 과연 정도의 길을 걷고 있는지 국민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신문방송과 인터넷언론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언론춘추정국시대를 맞고 있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매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언론은 많은데 왜 이렇게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인지 성찰해야 할 시점이 바로 오늘날이다. 과거에는 언론통제를 통하여 조작된 뉴스를 전달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였다면 요즘은 ‘좀 알아서 기는 형국’이다. 정론직필의 언론의 길이 아닌 야합과 아부의 언론이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뉴스를 교묘하게 재단하여 전달하는 기교가 엿보이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눈에 뜨인다. 과거에는 국민들이 이런 뉴스에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 중에 착각이다. 이는 지상파의 시청률 저하에서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부 뉴스채널이나 종편에서조차 쉽게 보게 된다.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것은 편집된 송출화면이다. 특히 집회장면의 인파편집에서 그 냄새를 풍긴다. 있는 그대로의 뉴스전달이라기 보다는 무엇인가 의도된 기법이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중앙언론이나 지방언론이나 할 것 없이 무수한 언론사들이 존재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사회적 이슈에 침묵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했다하더라도 심층적인 보도가 미흡하고 형식적인 보도나 아예 묵살해버리는 경우마저 생기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언론 통폐합으로 뜨거운 시절을 보낸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그리고 이 시절에도 그 어떤 압력과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로운 뉴스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에는 광고가 없는 신문도 존재하였다. 이런 탄압을 거친 언론들이다. 그런가하면 해직기자들이 넘쳐났다. 바른 말을 하던 언론인들을 갖은 굴레를 씌워 일선 현장에서 내쫓아 버렸다. 물론 이후에 상당수가 복직하였지만 그런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언론인들이 정론직필, 정도언론의 역사를 만들어 놨다. 그래서 이런 언론이야말로 당당한 언론이었으며 그런 곳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은 그야말로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언론춘추전국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논조가 정의롭지 못하고 정권과 이념의 논쟁에 휩싸여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하여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가 되면 이유야 어떻든 상처는 남게 마련이다. 의도적이고 무책임한 보도가 낳은 폐해이다. 언론사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면 이미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종사자들조차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울 것이다. 지금의 언론의 가는 길이 정도인지는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보도를 외면하고 작위적인 보도와 편성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왜곡하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수준이하의 졸작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은 과거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는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 인터넷시대, 다채널 다매체시대이다. 거짓 정보를 전달하면 이는 금방 들통이 나는 시대이다. 국민들이 오히려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스스로 가려내는 시대이다. 창피한 언론,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은 그것이 신문이건 방송이건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신은 오래간다.


 이런 현상이 지금 유튜브로 눈을 돌려 정보를 전달받는 신언론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실버세대들조차 유튜브에서 정치는 물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역으로 접하고 있다. 기존 지방파방송이나 종편, 심지어 뉴스채널에서 접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하여 접하다 보니 구독자가 50만 명은 물론 100만 명을 넘는 채널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기존 언론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소식들을 통쾌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대변혁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을 쓰고 있는 기존 매머드 언론사들과 비교하여 그 가성비를 따지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실을 담고자 노력하는 언론보다는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행태를 보이면서 박수를 받고자 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셈법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언론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고를 얻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언론들을 향해 국민과 시민의 세금을 갖고 광고를 주네 주지 않네 하며 재단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렇다고 할 이야기를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보도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국민과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아쉽게도 언론의 목줄은 사실상 정부가 쥐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 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종별 언론사는 2019년 5월 15일 기준으로 1만 8,969개에 달하고 있다. 이들이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은 2016년 이후 매년 5% 이상 성장하며 무려 2만 1,307개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인터넷 신문은 8,396개로 전체 44.26%를 차지해 가장 많다. 종이신문 매체수는 모두 더해도 3,268개이다. 이는 전체 17.23%로 인터넷신문에 비해 두 배 반 이상이나 적다. 위기상황이었던 지난 2015년 6,347개였던 인터넷신문은 2019년 5월 현재 8,396개로 4년 만에 무려 2,049개나 증가했다. 매년 500개 이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방송으로는 현재 공중파방송사인 공영방송 KBS와 민영방송 MBC, SBS, iTV가 있다. 기타 EBS, 케이블TV가 있지만 특성화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도 등장하여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이른바 종편PP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년마다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종편의 생명줄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쥐고 있다. 물론 지상파도 재허가 심사를 받는다. 사실상 이들 매체들은 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정권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와 SO/위성, PP종편, 보도, 홈쇼핑 등 재허가·재승인을 받는 사업자는 무려 ‘158개 사업자에 367개 방송국’이다. 방통위는 이들의 방송평가를 받아 재허가 및 재승인의 심사에 반영한다.


 언론이 이처럼 정부의 사정권에 들어있기 때문에 맥을 추지 못하는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론이 언론이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더욱이 여론을 조작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보도행태를 보인다면 이는 단죄되어 마땅하다. 언론의 숫자가 많고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정도언론이 아니다. 이런 언론들이 숱하게 존재함에도 유튜브가 새로운 언론시대를 구가하고 있음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기존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외면이 낳은 새로운 언론 자화상이다.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언론이 비겁한 언론과 당당한 언론으로 구분지어지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을 향한 진실보도가 그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언론시대를 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심지어 법무부의 언론통제의 발상은 그 자체가 법을 다루는 곳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자 하는 무지몽매한 발상으로 철회되어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역사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참으로 무서운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것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비겁한 언론과 당당한 언론이냐는 역사의 심판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절박한 시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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