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시금 생각한다

김헌태 논설고문 | 기사입력 2019/08/28 [16:55]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시금 생각한다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19/08/28 [16:55]

▲     ©한국시사저널

  이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단어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말이 되어 있다.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이 단어가 갖는 의미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내지는 공인(公人)이 지켜야할 덕목을 가리킨다는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영어: nobility obliges)란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로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인인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그야말로 아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나 이런 책무가 주어졌음에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인인 사회지도층들은 점검만 들어가면 메카톤급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줄줄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인생을 살았기에 그럴까 싶기도 하다. 첫째 재산규모에서 놀라고 둘째 시정잡배를 방불케 하는 허상들이 그렇다. 특히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들의 인사검증에서는 이른바 모든 속살이 국민들 앞에 드러나 결국 낙마하는 사례가 잦았다. 누구보다도 청렴하고 도덕적이기를 기대했던 국민들이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마디로 개망신을 당하고 속살만 보여준 채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들이 무려 기하인가 싶다.


 인터넷 검색만 해보아도 너무나 많다. 부동산투기에서부터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표절, 병역비리, 재산축적과정의 문제, 음주운전문제 등등 골든메뉴들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났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병역비리 ▲세금탈루 ▲위장전입 ▲연구부정 ▲부동산 투기를 임명검증의 5대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임명이 강행됐다. 그런 일부 장관들이 지금 공직을 수행 중이다.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금에 대한민국이 조국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자격을 놓고 엄청난 파문을 일고 있다. 장관후보자가 학교와 사모펀드 등 가족들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자녀들의 문제 등 각종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국민들은 사실 자괴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들까지 나서서 이를 성토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동안 대학가가 웬만한 사안에는 과거처럼 큰 목소리를 내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안의 중대성이 커지고 있다. 교수직도 내려놓고 장관 후보자도 사퇴하라는 촉구의 목소리이다. 특히 건국대 논문이랄지 장학금 수령문제, 입학의 전 과정들에 대한 자녀의혹은 한마디로 일파만파이다. 앞으로 이 문제는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심지어 고발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청문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연일 언론의 주요 기사를 장식하며 장관후보자로서의 적격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회청문회가 열린다 해도 결코 녹록치 않은 검증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 지도 자못 궁금하다. 그동안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임명이 강행되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점에서 강행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낙마냐 강행이냐 이 두 가지 경우 수 모두가 그 파문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이처럼 시끄러운 검증과정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언론의 집중포화가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천명했다. 이 같은 말은 온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족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국민들은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의 지지도도 충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국 임명 강행의 경우 수는 이런 말을 뒤집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여야 정치논리를 떠나서 국민논리로 바라보아야할 중차대한 사안임에 틀림이 없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장관이 법논리를 떠난 의혹으로 회자에 정리된다면 이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보여 온 조국후보자의 언행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비춰져왔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앞서 모두(冒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란 의미를 먼저 살펴본 이유는 사회지도층이야말로 바로 인생전반에서 이룩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公人)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사람들은 평소 도덕적 흠결을 주의하며 극히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정잡배와 같은 의식으로 막 사는 인생드라마로는 사회지도층으로서 결격요인임이 자명한 것이다. 작금의 검증 문제는 이런 냉엄한 교훈을 모두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동안 사회지도층으로 포장된 무수한 사람들이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그 허상을 드러내며 국민실망과 불신의 단초가 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지만 앞서 본 듯이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함축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왜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허상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실망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 조국후보자가 사모펀드와 웅동학원 등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것도 국민들에게 감흥은커녕 공허하게 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자신의 문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수반되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차제에 이를 교훈삼아 사회지도층들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인(公人)의 길에 나서지 말기를 권면한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보다 더한 인물들이 사회지도층이란 이름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화타령을 하면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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