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실업률과 국민정신건강

김헌태 논설고문 | 기사입력 2019/05/20 [13:19]

최고의 실업률과 국민정신건강

김헌태 논설고문 | 입력 : 2019/05/20 [13:19]

▲     © 한국시사저널

 지난 4월의 실업률이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자 수가 124만 5천 명, 실업률은 4.4%, 체감청년실업률은 25.2%이다. 실업자 수는 1999년 6월 통계를 작성한 이후 4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다. 실업률은 2000년 4월 4.5%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이고 체감 청년실업률은 2015년 1월 관련통계 작성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제조업, 도소매업 취업자가 줄어 고용률이 떨어지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통계청은 분석하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더욱 흥미롭다. 연령별 취업자 수는 30대에서 9만 명, 40대에서 18만 7천 명이 감소했다. 당연히 30대에서 50대까지 고용률도 감소했다. 도소매업이 7만 6천 명으로 가장 많이 감소했고, 그 다음이 사업시설관리·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이 5만 3천 명, 제조업이 5만 2천명 순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33만 5천 명이 증가해 전 세대 중에 가장 많이 증가하고 고용률도 역시 상승했다.


 여기에서 실업률 증가의 이유 중에 하나가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드러나면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해 20만 명에서 38만 명으로 폭증하자 실업률이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말았다. 비경제활동 인구 중에 ‘취업준비자’로 분류됐던 이른바 ‘공시생’들의 실체가 그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쏠림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지난 해 3월에는 20만 명 수준이었던 올해 약 38만 명으로 17만 8천 명 가량 공시생이 늘자 이 숫자가 청년실업률로 포함됐다. 물론 그동안에도 공시생수가 30∼40만 명 정도의 잠재적 숫자임이 강조되어 왔음을 상기해야 한다. 올해 지방직 공무원 시험접수로 그 실체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들의 취업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구직에 나섰다가 취업을 포기하는 이른바 니트족(NEET)인 ‘취업포기자’는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1년 이상 장기 15~29세 청년 니트족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는 분석도 이미 나와 있다.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란 말이 모든 실업의 의미를 상징한다. 이 말은 영국 노동정책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국도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모양이다. 이는 취업에 실패한 후 아예 구직 활동을 포기해 버리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다 학교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직업 훈련이나 교육도 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로 일을 할 의지도 일을 구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를 지칭하는 말로 쉽게 말해면 ‘백수’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어찌 보면 삶을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놀고먹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당사자들이야말로 정신적 갈등과 고통의 벽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 역학조사에서 우리 국민 중 4명 중 한명 꼴로 우울증과 불면증 등 각종 정신분야의 문제를 경험한 유경험자라는 분석이 이미 나와 있다. 당연히 공시생들의 정신건강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공시생중에는 장기간에 걸쳐 시험을 치루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10년 이상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올해 제1회 서울시 공무원시험 추가채용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544명의 최종 합격자의 연령대별 분포를 살펴보면, 20대가 362명으로 전체 66.5%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 28.1%(153명), 40대 4.6%(25명), 50대 0.7%(4명) 순이었다. 최고령자는 일반 행정 7급 장애인 모집 합격자로 59세였고, 최연소자는 20세(일반 행정 7급)이다. 얼마나 오랜 기간 공시생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 사례이다.


 문제는 낙방생들이다. 장기간에 걸쳐 응시하다 보니까 낙방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취준생들의 공시 쏠림현상을 우려하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공시생들의 기사를 자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인원을 늘린다고는 하지만 모두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한민국에서 9급 공무원 들어가기가 하버드 대학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다. 오죽하면 바늘구멍 같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겠는가를 살펴보면 청년 취업현실과 정신적 고통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경제를 살리자’는 말이 유행했다면 이제는 툭하면 ‘민생경제’, ‘서민경제’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경제 상황을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되고 있다. 1997년 몰아닥친 IMF 경제위기 때 이후 지금까지 청년실업에 관한 한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인 분석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당시 20∼30대가 지금 40∼50대이다. 오늘날 민생경제의 중심인물들이다. 당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20대이던 시절 너도나도 군 입대를 선택하던 세대이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길거리로 나앉는 직장인들이 넘쳐나 청년취업을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시대였다. 나라와 사회, 경제가 뒤집혀진 혼돈의 상황에서 당시 젊은이들의 고통쯤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세월을 겪어왔던 서민경제의 중추 연령대인 40∼50대가 이제는 자식들에게도 청년실업이라는 고통을 대물림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것이 단순한 일시적 경제현상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제현상으로 붙박이처럼 지속된다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불행이다. 당연히 나라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내려져야 한다. 경제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덮어버리고 매화타령만 늘어놓는다면 이는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경제의 상처가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거 IMF외환위기도 황당하게 자초했다. 그 고통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이 역사적인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들이 문을 닫고,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온 나라에 실업자가 넘쳐나는 사회는 미래비전이 있을 수 없다. 화려한 수사로 상처 난 경제를 포장하고 덮을 일이 아니다. 모두가 냉철히 현실을 바라보자. 정신건강의 문제는 단순히 정신질환자들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민의 문제가 되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경제문제가 분명 쟁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식으로 세월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논쟁만 일삼아서는 안 된다. 말로만이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 국민들이 지쳐가고 있다. 작금에 최고의 실업률, 추동력을 잃고 있는 국민경제의 난맥상이 국민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행간의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계치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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