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오늘

환인제국의 제왕들 28

<화백제도의 등장, 단군시대의 제7세~제10세 단군들

김수남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5/13 [23:19]

환인제국의 제왕들 28

<화백제도의 등장, 단군시대의 제7세~제10세 단군들
김수남 논설위원 | 입력 : 2026/05/13 [23:19]

▲     ©충청의오늘

 

역사를 돌아보면 한 시대의 품격은 그 시대를 이끈 통치자의 선택과 철학에서 비롯된다. 단군조선 초기의 여러 임검들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제7세부터 제10세에 이르는 시기는 그러한 고민이 제도와 현실 정치로 구체화된 중요한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제7세 단군 한속임검 시기는 혼란한 사상과 외부 정세 속에서 중심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당시 세상에는 신선술과 같은 요사스러운 술법이 퍼져 민심을 현혹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임검은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부정하며, 그러한 행위가 세상을 속이는 일이라고 단호히 규정하였다. 이는 단순한 금지 조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삶과 현실을 중시하는 합리적 통치 철학의 표현이었다.

또한 하나라의 정치가 문란해지자 신하들은 이를 정벌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한속임검은 “공연히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며, 영토를 얻기 위해 백성을 해치는 것은 어진 통치자의 길이 아니다”라고 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하나라는 스스로 조공을 바치고 복종을 맹세하게 된다. 무력보다 도덕적 권위를 앞세운 외교적 승리였다.

 

제8세 단군 우서한임검은 보다 적극적인 국가 운영과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한 인물이다. 그는 천하통일의 뜻을 품고 인재를 등용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였다. 특히 네 가구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토지를 분배하고, 각 단위마다 전차를 지급하여 향토 방위를 맡도록 한 제도는 공동체 기반의 국방 체계를 구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제 정책에서도 그의 개혁은 두드러진다. 세금을 20분의 1로 낮추고, 부족한 것을 서로 돕게 하는 공동체적 질서를 강조함으로써 백성들은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천하통일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그의 정책은 국가의 기초 체력을 단단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9세 단군 아슬임검 시기는 정치 제도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하 을성문덕은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며, 임검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사를 임검과 신하가 함께 논의하여 결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정치 철학이었다.

아슬임검은 이를 받아들여 매년 8월 1일, 각 부와 군의 대표들이 모여 국사를 논의하는 화백회의를 제도화하였다. 이 회의는 단순한 자문기구를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로 기능하였으며, 그 결정은 임검의 동의를 거쳐 국가 정책으로 시행되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찾아보기 드문 공화적 합의 정치의 한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제10세 단군 노을임검에 이르러 이러한 제도적 흐름은 더욱 정비되고 확장된다. 그는 기원전 1950년에 즉위하여 정부 조직을 혁신적으로 개편하고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였다. 특히 궁궐과 지방 행정 단위에 신원함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는 민생을 중시한 통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동산을 조성하여 가축 외의 짐승을 기르는 시도를 하였고, 자연 현상과 관련된 여러 기록도 전해진다. 불함산의 지진 이후 나타났다는 신기한 거북이의 이야기는 신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제7세에서 제10세에 이르는 단군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국가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도덕적 통치, 부국강병, 공화적 의사결정, 민생 중심 행정이라는 흐름은 단군조선이 단순한 신화적 국가가 아니라 일정한 정치 철학과 제도를 갖춘사회였을 보여준다. 특히 화백제도의 등장은 권력의 독점을 경계하고 공동의 합의를 중시한 정치 문화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오늘의 시점에서 이 시기를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 회고에 있지 않다. 인간의 도리와 통치의 원칙, 그리고 권력과 백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군시대의 이러한 시도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곡교천 수놓은 ‘이순신 축제’…“하늘엔 행글라이더, 물 위엔 보트”
1/100
김수남 교수와 차 한잔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