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 추진안

1.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 설립 타당성

정재홍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01/09 [16:33]

국립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 추진안

1.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 설립 타당성

정재홍 논설위원 | 입력 : 2021/01/09 [16:33]

  © 한국시사저널

 [신춘기획]

 

국립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 추진안

 

  최근 충북 충주지역의 시민단체 ‘충주포럼’을 중심으로 국립스포츠문화예술대학의 설립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역의 유수한 인사들이 모여 논의 중인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활성화 단계에서 잠시 휴지 중인 듯하다. 논의 내용을 많은 시민과 도민들에게 보다 가깝고 쉽게 알리기 위해 앞으로 8회에 걸쳐 그 배경과 전개 및 전망에 대해 연재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 차   례 -

 

1.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 타당성
2.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의 목적과 목표
3.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의 세부계획
4.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의 재원조달
5.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의 기대효과
6.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에 대한 추진방안Ⅰ
7.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에 대한 추진방안Ⅱ
8.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 설립에 대한 자치단체에 고함

 

 

 

 1. 국립 스포츠문화예술대 설립 타당성


  충북 충주는 역사 초기부터 우수한 문화예술, 그리고 무예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그 저변에는 인적재산과 환경적 배경이 독특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우선 삼국기의 충주는 한반도 중심의 중요한 도시로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많은 인구가 유지돼 왔다. 삼국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시대에 따라 여러 나라에 부속되면서도 도시의 기능을 잃지 않은 채 지역의 거점도시로 형성돼 왔음을 역사적 사실로서 조명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충주에 국립 스포츠문화예술종합대학(National SCAU)을 설립하자는 타당성을 전개하고자 한다.

 

  1. 역사적 배경

 

  가) 한반도의 중앙을 살찌우는 남한강 연변에 위치해 있다. 강원도 태백산에서 발원된 남한강이 영월, 단양을 거쳐 충주에 이르면 속리산에서 발원된 달천강과 마주쳐 남한강 본류를 이룬다. 이곳이 탄금대이다. 탄금대 아래쪽으로 탑평리의 강변평야지가 펼쳐졌고, 여기에 삼국기의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신라중원경연구/장준식)


  이를 토대로 볼 때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되면서부터 고대 인류가 단양의 석회암동굴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주거의 방식이 점차 움집의 형태로 바뀌면서 평야지로 나서게 됐으며, 강 하류로 이동하면서 마을을 이루기에 적합한 탑평리 지역에 도시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역사기에 이르러 반도 중앙의 가장 오래된 삶의 터전으로 확대되면서 여러 형태의 문화가 발달돼 왔다.


  나) 충주지역의 도시와 문화형성에서 가장 융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신라 및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우륵, 강수, 김생과 같은 문예에 출중한 인물을 배출했다.


  우륵은 우리나라의 악성으로 불릴 만큼 이 시대 최고의 음악인으로 가야국에서 태어났으나 진흥왕대에 신라에 귀의해 국원(충주)에 안치돼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음악은 가얏고의 계고, 노래의 만덕, 춤의 법지 등 세 제자에 의해 더욱 승화돼 신라의 음악으로 정착했다.


  문장가 강수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을 뿐 아니라 태종무열왕이 세운 오늘날 대학이라 할 국학의 학사가 되어 중국에서 들여온 9경을 가르쳤다. 그의 본명은 임우두이고, 강수라는 이름은 그의 이상하게 생긴 머리를 본 왕이 지은 이름이어서 임강수로 불리었다.


  김생은 스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행서와 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글씨는 중국에서 사신들이 오면 김생의 글을 얻어가기는 걸 최선으로 여겼을 정도다. 김생은 지금의 금가면 유송리에 보덕사를 짓고 스님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무술연맹을 충주로 유치하게 된 계기를 만든 택견이 일찍이 충주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놀이문화로 번성했다가 일제강점기에 한국문화 말살 정책으로 사라진 듯 명맥을 이어오다 1980년대에 부활했다. 고 송덕기옹으로부터 택견을 익힌 충주인 고 신한승씨가 1980년대에 본때뵈기 12마당을 완성하면서 지금의 무예로 살아났다. 이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됐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세계문형문화재로 등재됐다. 이를 계기로 충주탄금대에는 세계무술연맹을 유치해 격년으로 세계무술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과거로부터 삼국이 혼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면서 지금은 중원문화로 통칭되는 한반도 중앙의 문화영역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했으며, 세계무술연맹과 나란히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가 자리했다.


  다) 왕건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면서 고려가 한반도의 새역사를 열었다. 이 때 태조 왕건은 940년 전국의 군현을 개편하면서 중원경을 충주(忠州)로 개칭했다. 그 한자이름에서 보듯 충주는 가운데 마음의 고을(中心州) 즉, 중심고을이 됐다.  이제 충주로 불리어 온지 1,080년이 된 것이다. 한반도 중앙의 중심고을로서 한때는 충북의 수보로, 충남북을 통틀어 아우르는 충청도의 수부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모두 지난 일이다. 지금의 충주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은 여러 지방 도시 중의 하나일 뿐이고, 충주시민들조차 자긍심이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이에 우리는 다시 1,000년을 준비하고 새로이 도약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과거를 되짚어보면서【충주 1,000년!! 앞으로 1,000년!!!】을 실현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2. 지리적 배경

 

  가) 충주는 예로부터 한강의 수운과 하늘재, 새재를 통해 남부 3도에서 한성이나 중북부 5도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요충이었다.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걸쳐있는 하늘재는 초기신라 때인 156년 아달라이사금이 북진을 위해 개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죽령(158년)보다 2년 먼저 개통된 남북통로로,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이어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첫 번째 길이었다. 당시의 길이라 함은 사람이 줄서서 다니는 오솔길이 아니라 군사용 마차가 지날 수 있는 정도의 넓이를 가진 군사용 통로를 이르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왕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북쪽으로 죽령이, 남쪽으로 추풍령이 차례로 개통된다.


  조선초기인 1413년 태종이 조령을 개설한 뒤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주통로가 됐으며, 이곳을 통해 올라오는 세곡이 목계나루에서 한성의 마포나루까지 한강 물길을 이용해서 수송됐다. 충주는 육로나 수로 어느 쪽을 보더라도 당시 최대의 교통요지였다.


  나) 이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로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충주의 고갯길과 수운이 쇠퇴하더니 고속도로마저 추풍령 쪽으로 돌아가면서 해방 이후 충주의 입지는 매우 위축됐다. 또한 산업부흥기로 접어들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으로 인구마저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나고, 평택-제천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남북으로 난 단순통로에서 종횡으로 형성됐다. 철도교통도 충북선의 횡단에서 서울-충주-문경으로 이어지는 종단선이 개통을 앞두고 있어 역시 종횡철도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다) 청주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고, 인천공항도 2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어 외국과의 항로가 활짝 열려있다. 충주가 스포츠문화예술도시로 새롭게 변모하고 세계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국제공항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통일한국시대에는 우리나라 어느 곳이라도 등시간대(等時間帶)에 도달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 청주비행장이 세계를 오가는 국제공항으로 더욱 확장될 여지가 있다.


  학생과 교수진 등 대학의 구성원 비율을 내국인 50%, 외국인 50%로 운영한다는 목표로 준비하는 바, 국제적인 인적교류는 필수이다.


  라) 충주는 높고 낮은 산이 겹겹이 에워싼 널따란 분지를 이루어 독립적이고 독특한 도시 형성이 가능하다. 자연히 군사적 요충지로도 쓰였다. 충주시가지에서 남쪽으로 충주산성과 대림산성이 있고, 북쪽으로 탄금대토성과 그 너머로 장미산성이 있다. 이들 산성을 중심으로 사방 100리(40km) 이내에서 충주를 에워싼 산성이 40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각축장으로, 고려 이후에는 내륙지역 행정의 중심으로서 독특한 문화를 이루어 왔다. 이른바 중원문화이다.

 

  3. 환경적 배경

 

  가) 충주는 다른 어느 곳보다 빼어난 산수를 가지고 있다. 멀리는 백두대간이 버티어 섰고, 남한강과 충주호는 천혜의 수자원과 함께 수변경관을 매우 아름답고 부드럽게 만들고 있으며, 넓은 들과 구릉지도 펼쳐져 있다.


역사 초기의 도시가 탑평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근대에 이르러 보다 넓은 들판인 달천평야를 근거로 옮겨졌다. 충청도관찰사가 있던 성내동을 중심으로 남측 사천개 지역에는 평민들이 마을을 이뤘고, 북쪽 곡우문거리 쪽으로는 관아에 예속돼 있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 역시 지금의 교현천과 충주천이 맞닿는 중간지역이 시가지로 형성돼 온 것이다.


  나) 동남쪽으로 계명산과 남산, 대림산이 둘러쳐져 있고, 서북쪽으로 달천강과 남한강이 에워싸고 있어서 외지로부터 들어오는 인적, 사회적 문화는 충주만의 문화로 재탄생됐다. 독특한 문화의 예로 예성(蘂城) 성돌을 들 수 있다. 이 돌은 충청도관찰사의 건물 앞에 놓이는 댓돌 형태로 추정되는데 돌의 표면에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처음 이 돌을 발굴한 분들이 모여 예성동호회(현 예성문화연구회)를 결성해서 이후 고구려비와 같은 충주지역 역사 흔적들을 찾아내는데 크게 활약한다.


  이처럼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문화와 예술을 지켜온 충주는 새롭게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시키기에 알맞은 지형을 갖추었다. 또, 수변과 산자락이 잘 어우러져 세계인이 찾아오는 자연 친화적인 문화의 터전으로 조성한다면 한류의 중심 예술도시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다.


  다) 탄금호와 충주호는 스포츠 및 레포츠시설을 조성하는 데 매우 용이할 뿐 아니라 이들 시설과 어우러지게 하는 레포츠와 교육 및 훈련장은 물론, 국제경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미 탄금호에는 국제규격의 조정경기장이 조성돼 국내외 경기를 상시 치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곳은 조정뿐 아니라 수상스키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충주댐 상류에는 내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요트장이 있다. 충주시 동량면과 살미면, 제천시 한수면과 청풍면을 잇는 이 일대는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정도로 드넓은 수면을 자랑하고 있다. 수면의 중앙에서 벗어난 골짜기마다 특색 있는 수상스포츠 및 레포츠를 도입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라) 충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내륙지역으로 기후환경이 오스트리아의 비인과 비슷한 곳이다. 따라서 동양의 비인으로 만들어 가는 데 손색이 없으며, 여러 환경으로 보아 비인보다 훨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이다.


  즉, 수면이 방대하게 펼쳐져 있다. 강폭이 매우 넓으며, 탄금호와 달천강, 삼탄유원지를 따라 흘러내리는 제천천은 계곡을 활용한 자연경관 및 관광자원으로도 손꼽을만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4. 시대적 배경

 

  가) 개화기 이후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유별나게 높은 우리나라의 학구열에 따라 대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충주에도 2개의 종합대학이 들어서 있다. 이들 대학은 충주나 충북지역의 인적자원만으로는 입학정원을 채울 수 없다. 따라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그동안 개선된 교통의 편리함을 들 수 있다. 2021년 말에는 서울로 이어지는 전철이 개통될 예정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통학이 가능한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단순히 기숙사를 이용하거나 대학 주변의 숙소를 이용하는 차원을 떠나 각자의 집에서 통학하는 시대로 접어들기에 대학생을 유치하는 데 더 유리한 입지적 요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나) 대학은 이제 단순히 학문을 익히고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을 가지는 산학 및 지역협력시대로 전환되고 있으며, 스포츠와 문화예술분야에서 상호간의 실질적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교통대는 기존의 공업전문 계열에서 음악과 스포츠를 포함한 인문사회 분야로 교육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건국대 글로컬캠퍼스도 기존의 농축업 전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디자인, 인문사회, 의료생명과 힐링바이오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두 대학의 재학생 수만도 1만 6천 명에 달하고 있어 전체 인구가 22만 명 수준의 소도시 규모로서는 대학생의 비중이 7%를 넘기고 있다.


  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의 감소와 함께 취학하는 청소년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입학생 감소로 대학들도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점차 규모를 줄이거나 특성화 대학으로의 변환을 꾀하는 추세에 있으며, 경쟁력이 약화된 일부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앞으로의 대학은 이러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외국인의 절반을 대학 구성원으로 하는 글로벌대학으로 나가야 한다. 내국인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학문과 기능을 연마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세계인과 더불어 겨루고, 연마하는 경쟁 관계 속에서 더욱 빛나는 대학이 돼야 한다. 우리가 국립으로 가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 우리나라 국립대학의 경우 서울대를 비롯해 각 지역별 대학이 서로 비슷한 학과를 두어 학문적 깊이나 연구 성과, 사회로의 진출 및 접목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같은 과목의 학문을 익히면서도 발전 속도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의 비교평가나 경쟁관계에 이르기가 어렵다. 이들 국립대학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국스포츠문화예술대학교의 학과통합에 의한 운영이 요구되고 있는 바 이는 추진방안에서 다루기로 한다. *

 

 

 

정재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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